
절반만 서구적…충동적인 패션 피플을 지칭하기도
러시안 힙스터의 정체성은 분명 절반은 서구적이다. 물론 단지 서양문화 제국의 연장이나 그 아류로 볼 수는 없다. 아직은 대중 브랜드의 저속함에 당황하지 않는 러시안 힙스터는 서양 힙스터보다 훨씬 자주 스타벅스에 간다.
서양 힙스터가 소비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대중문화와의 관계와 이에 따른 문화 브랜드 형성에 더 민감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포스트 소비에트 시대의 첫 세대인 러시안 힙스터는 자본주의와 함께 성장했고 서양 힙스터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브랜드 다양화’라는 난해한 개념을 이어받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는 이어받게 되겠지만 말이다.
근사한 엔터테인먼트 잡지와 웹사이트 ‘아피샤’의 유리 사프리킨 전 편집장은 2003년 러시아 언론을 통해 처음으로 ‘힙스터’란 단어를 접했다. 처음에는 주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스타일에서 살짝 비켜간 패션에 중점을 둔 용어였다. 그러나 몇 년 후 이 말은 경멸의 뉘앙스도 띠게 됐다. 언론에서만 이런 뉘앙스를 사용하는 게 아니다. 공개 시위나 야권 인사의 지지 집회에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 힙스터 자신에게도 해당한다.
러시아 언론은 힙스터의 이런 활동을 ‘정치적 신념이 아닌 멋져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운동에 참여하는 충동적인 패션 피플의 퇴폐적인 행동’이라 주장한다. 더 심하면 자유민주주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아를 잃은 사람을 의미하는 ‘뎀시자(민주주의와 정신분열증 합성한 러시아어)’란 무서운 부류로 힙스터를 정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몇몇 러시아 언론인의 머릿속에서 ‘힙스터’가 우스운 사람으로 굳혀질수록 힙스터 스스로 본인이 힙스터라는 사실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크리스 플레밍 웨스턴 시드니 대학교 인문학부 소통예술학과 부교수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