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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책 집행 과학화가 절실하다

중앙일보 2013.09.17 00:25 종합 25면 지면보기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영·유아 보육과 교육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핵심적 투자다. 한국 역시 대규모 재정을 보육과 유아 교육에 투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0세 아동에게 연 900여만원이 지원된다. 그럼에도 아동학대·부실급식·회계부정 등으로 이용자의 만족도가 매우 낮다. 전국 4만여 개의 어린이집 중 평가인증을 유지하는 비율이 68%에 불과한데도 정부지원금은 모든 어린이집에 똑같이 제공된다. 당연히 어린이집 입장에서는 서비스 질을 높일 유인이 없다.



 방만한 예산 집행과 관리 부실은 다른 정책의 집행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왜 이렇게 사회가 이루고자 하는 정책이 계획한 대로 집행되지 않는 것일까? 과거 한국 정부예산이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가졌던 긴장감과 철저함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오늘날 개발도상국들이 ‘한강의 기적’에서 공통으로 배우는 교훈은 정책 집행의 과학적 접근이다. 정책 경험이 일천해도 명확한 목표 설정과 철저한 성과 점검으로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수출정책의 경우 연간 수출액이라는 정확한 목표액을 설정한 뒤 지역별·품목별 수출실적을 매월 점검하고 정책적 지원을 성과에 연동시켰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정책환경이 복잡해졌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정치가 민주화됐다. 따라서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고 정책의 추동력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선진국형 정책환경에서 정책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과학적인 정책 설계와 집행을 도입해야 한다.



 성과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성과를 지속 점검해 정책에 환류시킨다는 ‘정책 집행의 과학’은 영국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세계은행 김용 총재에 의해 유명해졌지만 한때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아무도 가르쳐주는 이 없이도 오래전에 이를 구현했다.



 예를 들어 대표적 성공 사례로 김용 총재가 찬사를 보내는 영국의 국영병원 대기 시간 감축 시도는 놀랍게도 새마을운동의 집행 방식과 닮았다. 2003년 영국은 낙후된 공공서비스의 전형이었던 국영병원의 대기 시간 감축 목표를 수치로 제시한 뒤 성과에 따라 병원의 등급을 매기고 금전적 유인을 연동했다. 1973년 한국 정부는 농가소득을 8년 내 3.3배로 증대시킨다는 목표를 세운 뒤 성과에 따라 전국의 마을을 등급화하고 정부 지원을 연동했다. 마을 간 경쟁으로 세계에 유례없는 지역발전 모델이 창출된 것은 이렇게 성과와 지원을 긴밀히 연계한 집행 방식 덕분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재정이 탄탄해지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이러한 긴장감이다. 많은 재정사업이 뚜렷한 목표 없이 도입됐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니 성과 관리가 미흡하고 정책에 환류시킬 방도도 보이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한국을 과학적 정책 집행의 종주국으로 평가하고 있으나 정작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재정 운용 원칙이 과거 유물이 되려 하고 있다.



 보육·유아 교육의 재정지출은 지난 4년간 2.6배로 증가했다. 평가는 하면서도 지원과 연계되지 않아 실질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다. ‘4년 내 어린이집 평가인증유지율 100% 달성’과 같은 계량적 목표를 세우고 평가 결과와 기관 및 이용 아동에 대한 지원을 연계하지 않는다면 부실기관 퇴출과 서비스 질 개선은 여전히 요원할 것이다. 어린이집의 평가인증 참여가 지체 없이 이뤄지려면 목표 도달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행정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정책 집행의 과학화는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절실한 과제다. 성장 잠재력이 하락하면서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정교한 정책수립과 철저한 집행으로 해결해야 한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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