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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호전'이 하루 만에 '수감생활 불가' 둔갑

중앙일보 2013.09.17 00:21 종합 12면 지면보기
‘여대생 청부살해 사건’ 주범 윤길자(68·여)씨. 윤씨는 2002년 여대생 하모(당시 22세)씨를 청부살해한 혐의로 2004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2007년 7월부터 올 5월까지 형집행정지 3회와 연장 15회를 허가받았다. 그의 ‘합법적 탈옥’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검찰 공소사실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청부살해 사모님' 주치의, 허위진단서 혐의 구속 기소
세브란스에서 입원 거절하자
주치의, 병원장 찾아가 항의
남편인 영남제분 회장도 기소

 서울서부지검 형사 5부(부장 김석우)는 윤씨의 주치의인 서울 세브란스병원 박모(54) 교수를 허위진단서 작성·행사 및 배임수재 혐의로 16일 구속 기소했다. 박 교수에게 1만 달러를 건넨 윤씨의 남편 류원기(66) 영남제분 회장도 함께 구속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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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은 2007년 7월 윤씨가 세브란스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윤씨는 당시 수술을 이유로 1차 형집행정지를 허가받은 뒤 6번이나 이를 연장했다. 특히 2008년 10월 박 교수는 ‘수감생활은 암의 재발은 물론이고 환자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는 소견을 적었다. 2009년 2월에는 34개의 외국 문헌을 인용한 논문식 소견서까지 제출했다.



 윤씨는 세브란스에서만 38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이 중 박 교수가 관여한 것은 23건. 그는 윤씨를 외래진료나 응급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입원시키는 특혜를 제공했다. 윤씨는 ▶형집행정지 기간 중 자택에 머물다가 ▶병원 입원 4일 뒤 연장 신청을 하고 ▶이틀 뒤 심사를 거쳐 연장이 결정되면 ▶이튿날 다시 퇴원하는 수법을 반복했다.



 2009년 12월 2차 형집행정지를 받게 되자 이들의 범행은 더 대담해졌다. 이듬해 7월 7일 ‘건강상태가 매우 호전되었다’는 진단서를 보고 류 회장은 (이런 것 말고) 좀 제대로 된 진단서를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만인 8일 ‘당뇨·압박골절·백내장 등으로 건강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아 수감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서가 발급됐다. 내분비내과·신경외과·안과에선 ‘더 이상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는 협진 소견을 냈으나 결론은 정반대로 났다. 올 2월 세브란스의 장기재원환자관리위원회가 윤씨의 입원을 거절하자 박 교수는 직접 병원장을 찾아가 항의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발급한 최종 진단서에는 유방암·파킨슨증후군·불면증 등 병명이 12개에 달했다. 검찰 관계자는 “박 교수가 발급한 진단서 29통 대부분이 과장됐으나 전문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법리상 명백한 3통에 대해서만 허위진단서작성죄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검찰의 계좌 추적 결과 류 회장은 2011년 8월 8일 직원에게 2만 달러 환전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튿날 류 회장이 서울행 비행기에 탑승한 기록과 세브란스 인근식당에서 2인분을 카드 결제한 사실이 발견됐다. 그날 박 교수는 병원 내 은행에서 본인 소유 계좌에 1만 달러를 입금했다. 검찰 관계자는 “그 외에도 의심스러운 돈이 다수 발견됐으나 대부분 현금으로 입출금돼 규명이 불가능하다”며 “두 사람은 아직까지 부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류 회장은 2005년부터 올 1월까지 영남제분의 법인자금 15억여원, 사료 판매 계열사 자금 65억여원, 부동산 임대회사 계열사 자금 6억여원 등 총 87억원을 빼돌려 보험료·세금·대출 상환 등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류 회장은 2010년 3월부터 올 1월까지 해당 자금으로 1일 평균 50만원씩 총 2억5000만원의 입원비를 결제했다. 당초 류 회장은 윤씨와 위장이혼설이 돌기도 했으나 서류상 혼인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민경원·구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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