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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반월가파 반발에 서머스 낙마 … 양적완화 축소 속도 늦춰지나

중앙일보 2013.09.17 00:01 경제 1면 지면보기


래리 서머스
래리 서머스(58) 전 백악관국가경제위원장이 차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 경쟁에서 탈락했다. 그는 “Fed 의장에 지명되는 것을 포기한다”고 16일(한국시간) 밝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띄운 편지를 통해서다.

서머스 "Fed 의장 후보 포기"



 서머스 낙마는 예견됐다. 지난주 민주당 내부의 반발이 표면화해서다. 상원 금융위원회 멤버인 존 테스터(몬태나주), 셔로드 브라운(오하이오주), 제프 머클리(오리건주) 등 3명이 공개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서머스를 지명하면 인준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했다.



양적완화 비판해온 강경 매파



 그들의 반발은 서머스에게 치명적이었다. 인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상원 금융위원회는 민주당 12명과 공화당 10명으로 구성돼 있다. 서머스가 3표 이탈을 메울 만큼 공화당 표를 끌어와야 한다. 요즘 같은 워싱턴 정치지형에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민주-공화당은 연방정부 부채한도 등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결국 서머스는 오바마에 띄운 서신에서 “인준과정이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라며 “이는 Fed나 행정부, 회복 중인 경제에도 좋지 않다”고 토로했다. 인준을 이유로 가장 유력한 의장 후보가 사의를 표명하기는 Fed 100년 역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반(反)월가 세력의 조직적 반발’이다. 서머스를 반대한 3명은 바로 ‘민주당 좌파’다. 미 보수 진영은 그들을‘신포퓰리스트’로 부르기도 한다. 월가의 역사가인 존 스틸 고든은 2011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월가 주도의 경제 독점화에 반대했던 포퓰리스트들이 21세기 금융위기를 계기로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월가 세력의 눈에 서머스는 위기의 주범 중 하나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금융규제 완화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서머스가 양적완화(QE)를 최근 비판한 것도 그들의 반발을 키웠다.



민주당 좌파 3인 공개적으로 반대



반월가 세력을 대변하는 딘 베이커 경제정책연구소(CEPR) 공동 소장은 홈페이지에 올린 글 등에서 “오바마가 서머스 등 과거 클린턴 시절 사람들에 의해 포위당해 있다”며 “그들이 오바마 경제정책의 방향을 오른쪽(보수)으로 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의 일격에 서머스가 나가떨어진 셈이다.



 이제 Fed 의장 자리는 재닛 옐런(66) Fed 부의장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옐런은 민주당 리버럴 쪽이 선호하는 후보다. 최근 민주당 상원의원 20명 정도가 그를 지지한다고 서명할 정도였다. 옐런이 통화가치 안정보다 일자리 창출을 강조해서다. 그는 Fed 안에서 양적완화를 사실상 주도했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IGE) 이사장은 “서머스가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반면 옐런은 미국의 국제적 역할을 감안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옐런이 의장이 되면 신흥국 등의 반발을 고려해 양적완화 축소 시점을 조절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옐런 첫 여성 의장 가능성 커져



 옐런의 앞길도 순탄할 것 같지는 않다. 공화당이 벼르고 있다. 제2의 피터 다이아몬드 교수 사태가 날 수도 있다. MIT대 경제학과 교수이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이아몬드는 오바마에 의해 2010년 Fed 이사로 지명됐다. 하지만 공화당은 “그가 금융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인준 과정에 딴죽을 걸어 결국 낙마시켰다.



 로이터통신은 “옐런이 공화당 의사진행 지연작전(필리버스터)을 이겨내기 위해선 상원에서 60표 이상을 얻어야 한다”며 “민주당표는 54표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공화당 지지를 이끌어내야 하는 운명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옐런이 (고용을 강조하는 바람에) 달러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며 직간접적으로 반대 의사를 드러내곤 했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강한 달러(통화가치 안정)를 중시해왔다.



‘그린스펀 오른팔’ 콘도 물망



 그래서 제3의 후보가 거론되기도 한다. 도널드 콘(71) 전 Fed 부의장이다. 그는 1987년 10월 주가 대폭락(블랙 먼데이) 때 우왕좌왕하는 앨런 그리스펀 당시 의장 뒤에서 사태 진화를 주도했다. 버냉키 초기에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Fed 부의장에 임명됐다. 공화당의 반대가 그나마 거세지 않을 후보다. 그는 원칙보다 경제 상황에 따른 재량권을 중시한다. 룰(준칙)을 중시하는 버냉키보다 그린스펀에 가까운 인물이다. 블룸버그는 “그가 의장이 되면 시장은 그의 입을 주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라고 전했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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