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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아테네도 지금 대한민국처럼 ‘’말빨 센 자들이 판쳤죠

중앙선데이 2013.09.14 01:10 340호 17면 지면보기
세상은 웃지 못할 코미디다. 잘 살려고 대학을 가면 먼저 빚더미에 올라야 하고, 바르게 살려고 교회를 가니 성직자 집안이 막장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연다. 권력의 깃털들은 몸통보다 더 큰 오물을 배설하고, 치명적인 거짓말은 금세 ‘농담’으로 수습된다. 모든 부조리를 지탱하는 것은 ‘말’이다. SNS라는 정보의 수다는 실체가 없는 거대한 욕망의 구름이 되어 취향 따라 색색깔 궤변의 비를 뿌린다.

아리스토파네스 풍자극 ‘구름’ 연출가 남인우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도 똑같았다. 아테네 민주주의가 발전하자 ‘말빨’이 중요해졌고, 성공을 위한 궤변술을 전수하는 ‘멘토’들이 비싼 수업료를 챙겼다. 국립극단의 2013 가을마당 그리스 희극 3부작은 풍자극의 효시 아리스토파네스의 눈으로 2500년 세월이 무색하리만치 조금도 변하지 않은 인간들의 초상을 반추한다.

사실 그리스 비극에 비해 희극은 한참 낯설다. 인간의 원초적 본성에 대한 성찰로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공감을 사는 비극에 비해 시대성에 크게 좌우되는 희극의 호흡을 재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젊은 여성 연출가 남인우(40)의 도전이 눈길을 끄는 것도 그래서다. 이자람의 창작판소리 ‘사천가’와 ‘억척가’를 낳은 숨은 주역이자 ‘소년이 그랬다’ 등 예술적으로 손색없는 청소년 연극을 내놓으며 블루칩 연출가로 떠오른 그가 3부작의 두 번째 작품 ‘구름’(9월 24일~10월 5일 백성희장민호극장) 각색·연출을 맡았다. 판소리·음악극·창극 등 장르를 불문하고 동시대인의 삶에 다양한 각도의 질문을 던져온 그가 이번엔 고대인의 입을 통해 세상에 어떤 질문을 던질까.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연습실을 찾았다.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대본을 외우며 동선을 체크하고 있을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배우들은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엉거주춤 술래를 피해 다니다 잡히면 고통스러운 죽음을 연기한다. 서로 눈을 감고 있기에 잡힐 듯 말듯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뻔한 가짜지만 진지하게 죽어가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터진다. 남인우 연출은 이 놀이를 ‘목적을 잊지 않기 위한 경고’라 소개한다. “이 놀이가 재미있는 건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이죠. 잡으려는 또는 잡히지 않으려는 목적에 충실하니 긴장감이 느껴지는 거예요. 코미디다 보니 배우들이 자꾸 목적을 잊어버려요. 희극일수록 오히려 더 연극적이고 문학적이어야 하는데 뜬금없는 개그로 쉽게 넘어가려 하죠. 현혹되지 않으려 각오를 다지는 작업이에요.”

그가 말하는 개그와 코미디의 차이는 ‘목적’이다. 개그와는 다른, 연극만이 가진 즐거움은 목적을 잊지 않을 때 얻어진다. “개그는 목적과 상관없어요. 상황만 있으면 되지 드라마가 중요하지 않죠. 연극은 상황도 터져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전체를 이끄는 힘이죠. 한순간 웃겨버리고 지나치면 뜬금없는 개그가 돼버리고, 목적을 잃어버린 극은 더 이상 재미있지 않아요.”

풍자란 아슬아슬한 줄타기 묘미 지켜야
아리스토파네스 원작의 ‘구름’은 빚에 쪼들리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소크라테스의 현란한 궤변술을 가르쳐 빚을 탕감받지만, 아들이 패륜을 저지르고도 궤변술로 자기를 정당화하자 소크라테스의 학교에 불을 지른다는 내용. 표절·윤창중·종북·일베·멘토·트위터·클라우드·지식인 등 우리 사회를 코미디로 만드는 다양한 키워드를 욕심껏 담았다.

그간 무대화가 드물었던 그리스 희극을 지금 재조명하는 것은 2500년 전과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기에 가능했다. “‘코미디’란 말을 어떨 때 쓰나요. 어처구니없을 때 쓰죠.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 같아요. 아리스토파네스가 이 희극을 썼을 당시 아테네와 지금 상황이 비슷해요.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기울지 않고 사람을 현혹시키는 상황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잖아요.”

‘말빨’만 앞서는 소피스트들이 최고 대접을 받던 세상과 SNS 등 개인미디어 난립으로 시끄러운 요즘 세상이 절묘하게 일치한다는 얘기다. 제목 ‘구름’의 상징성 자체가 오늘의 세태를 정확하게 풍자하고 있다. “구름은 욕망에 따라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변하죠. 똑같은 걸 보고 나는 용, 쟤는 돼지라 해요. 지금 시대도 그래요. ‘클라우드’는 모든 정보가 집약된 곳인데, 정보라는 것도 각자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거잖아요.”

그는 ‘구름’이 “개인의 욕망이 교육과 제도를 통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대한민국을 점령한 ‘말빨’이 세상을 올바르게 만드는 가치가 아니라 각자의 욕망에 기초하고 있고, 교육조차 욕망을 부풀리고 시스템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요즘은 좋은 직장 취직해 돈 벌려고 대학을 가죠. 대학이란 원래 ‘큰 학문’ 아닌가요. 참된 가치를 연구하는 건데 요즘 철학·심리학이 그렇게 쓰이고 있나요. 대기업이 물건 잘 팔기 위해 도구로 쓰이는 학문이 됐죠. 교육뿐 아니라 이 시대가 가진 모든 말빨들이 다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느냐는 것이 제가 던지는 질문이에요.”

사랑과 결혼 등 일상적 소재를 다룬 보통 희극과 달리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공동체의 행복과 안녕에 위해를 가하는 것들을 비판했던 아리스토파네스의 정치 희극은 노골적인 풍자와 조롱으로 시민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구름’으로 인해 생긴 루머가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일조했다는 해석이 나올 정도로 당시 인기는 대단했다. “요즘 개콘도 인기 있지만 예술적이지는 않죠. 아리스토파네스는 대중성과 문학성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었어요. 실존인물에 대한 거침없는 일침도 인기의 비결이었는데, 정치적 입장은 있어도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지 않는 균형감 때문에 누구나 재미있게 봤던 거죠.”

남인우의 ‘구름’도 직설적인 풍자를 시도하면서 정치적 성향은 애써 배제했다. 우리 사회를 코미디로 보이게 하는 정치적 상황, 인물을 풍자할 뿐 개인적인 입장을 내세워 다른 편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관객 무시라는 입장이다. “저울이 기울어지면 불편해져요. 우리 탈춤도 굉장한 인기였는데, 말뚝이가 양반을 풍자하고 직설적으로 혼을 내도 불편하지 않은 건 드라마 안에 논쟁이 없기 때문이에요. 상놈과 오입쟁이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말을 우스개로 만들어버리고 서로 항변하게 하지는 않죠. 풍자란 줄타기의 묘미를 지켜야 해요.”

사실 연출가 남인우를 세상에 알린 건 창작 판소리 ‘사천가’와 ‘억척가’였다. 소리꾼 이자람과 함께 만든 ‘판소리 브레히트’라는 새로운 양식은 국내는 물론 해외 관객까지 매료시키며 K컬처 대표상품으로 세계를 누비고 있다. 외국인들이 이자람에게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동시대성과 테크닉’을 꼽는다. “동양에서 온 조그만 애들이 자기네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테크닉으로 자기 마음을 만져주니 환장을 해요. 사천가·억척가는 동시대인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적인 얘기죠. 미니멀한 음악에도 매료되는 것 같아요. 배우 한 명이 이 역할 저 역할 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듯 음악도 간단한 리듬으로 풍경을 그려내거든요. 오케스트라도 아닌 악기 몇 가지와 상상력으로 거대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혹되는 것 같아요.”

연극은 삶에 대해 질문 던지는 인문학
판소리로 이름을 알렸지만 원래 그의 전공은 어린이청소년극이다. 올해만 해도 4월 어린이음악극 ‘땅속두더지 두디’, 5월 청소년연극 ‘소년이 그랬다’, 6월 청소년창극 ‘내 이름은 오동구’ 등 연달아 세 작품을 올렸다. 어릴 때 문제아였다가 연극의 ‘as if’의 세계로 들어오면서 행복해지기 시작했다는 그는 “스스로를 칭찬하기 시작하니 타인과 커뮤니케이션도 할 수 있게 되더라”며 그런 예술의 가치를 아이들과 나누고 싶단다.

어린이청소년극이라고 얕잡아 보면 오산이다. 오히려 연극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그는 말한다. ‘연극이 어떤 가치를 가져야 되며, 연극 언어가 얼마나 문학·음악적이어야 하는가’가 더 명확해지기 때문이란다. “옛날에는 동화나 그림책을 무시했지만 요즘엔 더 미적이지 않나요. 마찬가지로 어린이청소년극도 더 미적인 가치가 있어요. 좋은 작품은 그래요. 미적인 걸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레 연극적 언어가 두드러지고, 상징과 은유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가 잘 들리죠.”

그러나 아직 한국은 불모지에 가깝다. 예술도 수학공식처럼 학교 성적과 만나길 바라는 부모들의 욕심 때문이다. “예술이 예술로서의 가치를 가지면 자연스럽게 교육적 가치를 갖는데 우리 부모들은 예술도 교육처럼 되기를 원해요. 삶의 가치가 아니라 뭔가 배웠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을 좋아하죠. 하지만 그렇게 생겨난 에듀테인먼트가 돈은 벌 수 있겠지만 감동은 줄 수 없어요.”

관객이 극장이라는 공동체 안에 들어와 역할을 할 때 작품이 완성되는 경이로운 체험 자체가 교육적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연극은 그날 관객이 어떠냐에 따라 50프로 이상 차이가 나요. 관객인 나도 능동적으로 작품의 일부가 되는 거죠. 그래서 그리스에서는 시민교육을 연극으로 했어요. 연극은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인문학이에요. 관객이 소비자를 넘어 공동체의 생각하는 일원으로 존재하려면 질문을 던지는 연극들이 필요해요. 아이들에게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떤 질문을 던지게 할 것이냐, 무엇을 보고 느끼게 할 것이냐를 고민하는 작품들이 나와줘야 진짜 우리가 원하는 교육적 가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식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눈, 삶에 대한 태도를 전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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