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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전했던 오빠들 망가지는 모습 웃기면서도 씁쓸하네

중앙선데이 2013.09.14 01:50 340호 25면 지면보기
신동엽과 유희열의 만남은 마치 주류의 정통 황제와 재야에 숨어있던 고수의 역사적 결합 같았다. tvN ‘새터데이나이트라이브(SNL)’에서 두 사람은 ‘우윳값 인상’에 대응해 모유를 먹어야 한다며 젖병을 들고 서로의 입에 꽂아주었다. 지상파에서 변태 기질을 맘껏 드러내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해 보였던 신동엽은 10년 넘게 심야 라디오와 TV에서 차곡차곡 ‘감성변태’ 내공을 쌓아올린 유희열을 데리고 ‘메시와 호나우두’의 만남이라는 네티즌 반응을 이끌어내며 이른바 ‘섹드립(즉흥적인 성적 농담)’의 꽃을 활짝 피워올렸다.

컬처# : 19금 유머의 사회학

유희열은 이미 지난달 ‘방송의 적’ 마지막 회에서 하이힐 냄새를 맡고 몸에 채찍을 맞으며 “이것이 ‘토이’의 감성을 낳은 오브제”라며 변태감성을 뽐냈다. 네티즌들마저 ‘이래도 되나’ 걱정하게 만들 정도였다. 원래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 이적은 여기서 여자 후배를 음탕한 눈으로 바라보는 속마음을 드러냈다. 존박은 틈만 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짜 바보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덜덜이’ 캐릭터를 연기했고 냉면만 먹으면 바보로 돌변하는 ‘냉면 성애자’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발라드 황제로 불리며 밤마다 라디오에서 “잘 자요”라는 달콤한 멘트로 여자들을 녹이던 성시경도 JTBC의 ‘마녀 사냥’에서 연애 고민을 상담하는 시청자 사연에 즉석에서 재연을 펼치더니 “섹시 이벤트가 좋다”는 둥 어떻게 하면 더 야한 핵심을 찌를까 고민하는 모습으로 동참했다. 천하의 유재석도 이런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는지 지난주 무한도전에서 엎드려 엉덩이를 흔들고 벌렁 드러누워 아랫도리를 들썩들썩 들어올리는 춤으로 무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알고 보면 음흉한, 알고 보면 멍청한 오빠’들이 되고 싶어하는 얌전했던 오빠들의 모습은 확실히 인터넷 세대의 B급 유머 감수성이 완전히 TV로 흡수된 때문인 듯하다. 이른바 ‘병맛’ ‘개드립’ 혹은 ‘섹드립’을 보면서 거부감보다는 “이게 뭐야”라면서도 킬킬대는 ‘선병맛 후중독’의 쾌감을 즐기는 것이다. 신동엽·안영미 등이 개그 본능으로 꿋꿋하게 지켜온 B급 유머의 줄기는 ‘명문대 출신’ ‘진지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음악인’ 혹은 ‘국민 모범생’들의 합류로 ‘감성 변태’ ‘순정 병맛’의 새로운 감성의 화학 결합을 만들어낸다. 사실 이들의 야한 농담이나 바보천치 짓이 더 먹히는 것은 이른바 일류대나 일인자의 든든한 뒷배경이 있기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뭔가 안전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속에 가지고 있는 걸 이제야 그대로 드러냈을 뿐이라고는 하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타블로나 로이킴같이 엘리트들이 엘리트 이미지로 부각되었을 때 그에 대한 반감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던 전례를 반면교사 삼아 일부러 더 저급한 감성으로 본인을 비틀어놓는 영리한 전략을 택한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스스로 망가지며 19금 유머를 펼치는 이런 모습들은 확실히 진지하고 성실함으로 한 시대의 대세를 이뤘던 유재석·강호동이나 거침없이 상대방을 공격하며 초토화시키던 김구라·박명수의 막말 개그 등과는 다른 흐름이 등장했다는 걸 알게 해준다. 유머의 핵심은 역시 권위를 무너뜨리고 이미지를 반전시키는 묘미에 있는 것이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권위인 성이나 엘리트 의식 혹은 착해야 한다는 도덕적 이미지 등을 깨는 이런 유머들이 숨어있는 본능과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라 보기에 즐겁다.

하지만 100% 웃고만 있기도 좀 그렇다. 가장 큰 성역이고 풍자의 대상인 정치나 사회문제를 제대로 들이밀 수 없는 우리나라 ‘유머계’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가 이런 쪽밖에 없겠구나 하는 이유 때문이다. 유희열이 이번 주부터 맡기로 한 ‘위크엔드 업데이트’는 원래 유머감각을 가진 드문 앵커 최일구가 맡기로 했다가 일찌감치 물러난 자리다. 신동엽이 이 코너 제목을 ‘몸으로 풀다’라고 붙인 것처럼 시사나 정치를 말로 풀 수 없는 코미디가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은 역시 ‘몸’밖에 없나 싶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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