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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샘플 분석에 6시간 … 명절 직후 의뢰 급증

중앙선데이 2013.09.14 23:25 340호 5면 지면보기
크라운진 연구원이 친자 확인을 위해 유전자 분석기를 가동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친자 확인 업체의 대목이 언제인 줄 아세요? 추석 명절이나 설 직후입니다.”

유전자 감식 통한 친자확인 어떻게 하나

유전자 분석기술로 친자 확인을 하는 업체인 크라운진 박진철(40) 대표의 말이다. 박 대표는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만, 명절에는 가족·친지들이 모여 자녀를 두고 누구를 닮았네, 안 닮았네 하지 않나. 평소 막연히 의심하던 부모가 이런 말에 자극받아 확인하는 것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 의혹과 관련해 유전자 감식을 하겠다고 밝히면서 친자 확인을 위한 DNA분석 방법 등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유명인의 불륜·혼외 자녀 스캔들은 동서고금 끊이지 않는 화제였다. 하지만 사생활이 ‘진위’를 둘러싼 추문으로 끝없이 확대되는 일은 이제 드물다. 엄청난 정확도를 자랑하는 유전자 분석 기술이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서구처럼 사생활의 문제를 공적인 영역과 얼마나 관련 지을지 사회적 논의가 더 활발해지는 배경이다.

정확도 99.99997% 자랑
12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크라운진 본사에서 만난 박 대표는 “유명인의 혼외자녀 스캔들이 터진다고 업체에 들어오는 의뢰가 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세간의 짐작과는 다른 얘기다. 박 대표는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이 커졌을 때면 오히려 자제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친자 확인 절차는 비교적 간단하다. 개인 목적이라면 전화나 e메일로 신청한 뒤 샘플을 우편으로 보내도 된다. 검사 결과를 법원 같은 공공기관에 제출해야 할 경우에는 본인 것임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당사자가 업체로 직접 오거나 직원이 출장을 나간다. 비용도 조금 더 든다.

샘플이 도착하면 우선 전(前) 처리를 한다. 오염물질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클린 벤트라는 장치를 이용한다. 다음 친자 확인에 사용될 특정 유전자 부분을 여러 시약을 이용해 추출한다. 여기까지는 숙련된 전문가가 수작업으로 한다. 이어 확보된 유전자의 양을 늘리는(증폭) 과정을 거쳐 유전자 분석기에 넣는다. 한 대에 2억원이 넘는 유전자 분석기 내부에서는, 레이저 분광 장치가 유전자 정보를 정밀하게 측정한다. 모든 과정은 자동이다.

샘플 분석지를 얻었다. 장비 테스트용 샘플이지만 실제 데이터다. 여성 A의 염색체(X, X)와 남성 B의 염색체(X, Y)에 대해 15개 유전자 항목의 비교표가 수치로 나왔다. 두 사람이 공유하는 X 염색체에 대한 측정치를 보니, 모든 수치가 소수점까지 완벽하게 일치한다. 두 사람이 부모-자식일 확률 99.99997%다. 박 대표는 “잘못 판정할 확률은 80억분의 1이다. 유전자 정보가 완전히 같은 일란성 쌍둥이를 뺀 지구상 모든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샘플 도착부터 모든 과정을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6시간 정도다. 문서로 통보를 받으려면 서류 작업과 배송에 며칠이 걸리지만, 결과 자체는 검사 당일 전화로 확인할 수도 있다. 비용은 1인당 일반 작업은 12만원, 공공기관 제출용은 15만원 정도다. 보통 두 사람분을 하는 데 30만원이면 된다.

갈수록 기술 발전 … 이동식 장비도 나와
친자 확인은 유전자 분석 기술이 적용되는 극히 일부의 사례다. 의학·생물학의 최첨단 연구 분야라 적용 대상도 많다. 질병과 관련한 유전자 분석은 법률에 의해 의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의료기관이 전담한다. 질병과 무관해 의사가 없는 일반 기업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장이 친자 확인을 비롯한 개인식별 분야다.

모든 유전자 분석기관은 한국유전자검사평가원의 평가를 매년 받아야 한다. 평가원 총무부장인 울산의대 이우창(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지난해 평가에서 분석 능력 최상급인 A등급을 받은 곳은 100개다. 대부분 대학병원 같은 의료기관이며, 제약회사 같은 비의료 기관은 10여 개다. 올해 평가는 현재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A등급 비의료 기관 중에도 친자 확인 업무를 하는 곳은 크라운진, 다우진유전자연구소, 휴먼패스, 한국유전자정보센터 등 4~5곳 정도다. 이들 업체도 친자 확인만 하는 건 아니다. 업무는 ▶개인 상대 친자 확인 업무 ▶법원·경찰·국방부 등 공공기관의 위탁 업무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위탁 업무로 나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자체 분석 업무가 폭증할 경우 시설·자격을 갖춘 업체에 일부 물량을 넘긴다. 이때 민간 업체로 오는 샘플은 특정 사건과의 관련성을 전혀 알 수 없게 진행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도 각 업체에 일부 분석을 맡긴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선 주로 중국동포가 국내 거주 친인척의 초청을 받아 입국할 경우 유전자 분석 감정서를 요구한다. 민간 업체로선 비교적 큰 시장이다.

하지만 이걸 모두 합쳐도 민간 업체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규모는 못 된다. 크라운진도 유전자 기술을 활용한 고가 기능성 화장품을 개발·판매하는 ‘부업’을 하고 있다. 일부 기술력 있는 기업들은 해외 시장을 노린다. 유전자 분석 벤처기업인 디엔에이링크는 12일 개인식별칩 ‘어큐아이디’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 남궁현 부장은 “기존 기술로 분석이 어려운 수십 년간 땅 속에 묻힌 유해 분석도 가능하다. 국내와 달리 미국에선 수사기관들이 분석 업무를 대부분 민간에 위탁하기 때문에 시장이 커서 해외를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외 기업들이 속속 내놓는 이동식 DNA 분석기(PDA·Portable DNA Analyzer)도 흥미롭다. 연구실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분석하는 장비다. 강력 사건 또는 대형 재해 현장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다. 아직 여행용 트렁크 크기지만, 전문가들은 수년 내에 훨씬 작아질 것으로 본다. 우마 서먼 주연의 1998년 영화 ‘가타카’는 모든 사람들의 유전 정보가 데이터베이스(DB)에 모여 있고 곳곳에 분석 장비가 있어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현실이 된 얘기다.

오리발 불가능 … 사회의 인식 변화가 관건
‘혼외 정사와 숨겨진 자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은밀한 화제가 돼 왔다.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인사가 관련되면 커다란 스캔들로 비화하는 경우도 많다.

국내에서도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이 혼외자녀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차영 전 민주당 대변인과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 사이에는 친자 확인 소송이 진행 중이다. 소설가 이외수씨도 혼외자녀 문제로 올해 초 곤욕을 치렀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불륜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를 몰래 키워온 게 드러났다. 올해 초에는 상원 의원만 여섯 차례 지낸 피트 도미니치 전 의원이 34년 전 혼외 정사로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고백해 화제가 됐다.

수십 년 전과 달라진 것은 기술 수준이다. 유전자 분석 기술 때문에 이제는 ‘정황’을 둘러대며 진실을 회피하는 게 불가능하다. 진위 판별은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유명인의 사생활과 공적 언행 간의 관계가 중요해졌다. 도미니치 상원 의원의 고백 직후 워싱턴포스트는 “워싱턴에서 정치인의 섹스 스캔들과 사생아 논란은 별로 놀라운 사건이 아니다. 스스로 사생활을 깨끗이 인정하면 여론의 비판도 줄어든다”고 보도했다.

프랑스는 그런 면에서 다른 국가보다 일찍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경우 혼외 관계에서 얻은 딸의 존재가 밝혀지자 이를 담담히 인정했다. 미테랑은 임기를 모두 마쳤고, 그의 장례식에는 혼외 관계에서 얻은 딸 마자린이 참석했다. 반면 처음 이 사실을 선정적으로 보도한 매체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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