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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주공아파트 … 상품 아닌 鄕愁의 공간

중앙선데이 2013.09.14 23:57 340호 7면 지면보기
중앙포토
서울 강동구 둔촌1동에 있는 둔촌주공아파트. 1979년 완공됐으며 총 5930가구에 이르는 대단지다. [사진 이인규]
“고향이 어디세요?”

30~40대 아파트 키드의 실향가

모든 것은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짠내 나는 바닷바람,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흙먼지 날리는 길처럼 서정적인 장면도, 정겨운 풍경도 가져보지 못한 서울내기들에겐 단답 외에 덧붙일 말이 없는 질문이다.

대도시 서울은 고향이란 단어와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 하물며 아파트는 어떨까.

한국의 아파트를 연구한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책 『아파트 공화국』엔 이런 대목마저 있다.

“한번은 동료 도시계획가에게 서울의 5000분의 1 축척 지번약도를 보여주었더니 ‘한강변의 군사기지 규모는 정말 대단하군’이라고 했다. 바로 반포의 아파트단지였다.”

네모 반듯한 건물이 200동 넘게 줄지어 늘어선 모습이 외국인의 눈에는 군대 막사로 비쳤던 것이다. 군사기지까지는 아니어도 아파트가 갖는 이미지는 우리 눈에도 잿빛이다. 콘크리트로 쌓아 올린 성냥갑 더미.

하지만 이곳에서도 누군가는 태어나고 자란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주차장에도 소중한 추억이 쌓인다.

올 5월 발간된 독립잡지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는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 키드’의 고향 예찬이다. “서울도 고향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데, 그 삭막한 아파트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고향이랄 게 있겠느냐”는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따뜻했던 시절을 보낸 곳, 늘 마음속으로 돌아가고픈 고향이 서울의 대단지 아파트”라고 얘기한다.

아파트도 누군가의 소중한 ‘고향’
잡지의 주인공인 둔촌주공아파트는 서울 강동구 둔촌1동에 있는 4개 단지, 5930가구의 대단지 아파트다. 59만4000㎡(약 19만 평) 넓이인 동(洞) 전체를 아파트가 차지하고 있다. 1979년 첫 입주를 시작한 이래 올해로 서른다섯 해. 그동안 수십만 명이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고, 지금도 3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살고 있다.

지금이야 단지 앞으로 10차선 대로가 뻗고 옆으로 올림픽공원이 자리 잡았지만, 30년 전만 해도 일대는 아파트만 휑하게 놓인 허허벌판이었다. 이런 곳에 지어진 용적률 87%의 대단지는 ‘콘크리트 성냥갑’이라기보다 울창한 숲 속의 쾌적한 주거단지였다. 단지 뒤편엔 도시에선 보기 드문 습지가 있어 서울시가 생태 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느 노후한 아파트들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둔촌주공아파트는 올해 초 서울시로부터 재건축 승인을 얻고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수년 내에 평균 용적률 273.9%의 최고 35층, 1만1000여 가구의 초대형 아파트숲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땐 한국 주택건설사의 중심에서 서민을 상징하던 ‘주공’이란 이름도 사라지고 근사한 브랜드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터다.

5월 발행된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첫 호(왼쪽)와 발행을 앞둔 두 번째 호의 표지.
직장인 이인규(31)씨가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를 펴낸 건 머지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고향’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고 난 후 마음이 허해서 어딘가 몸과 마음을 누이고 싶을 때, 고향이 그리울 때면 펼쳐볼 수 있도록 둔촌주공아파트에서 보낸 행복했던 유년시절의 추억과 아름다운 지금 이 순간을 엮어 기록들로 남기고 싶었다.”

그는 둔촌주공아파트에서 태어났고 초등·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다른 곳으로 이사해 살던 그가 이곳으로 돌아온 건 직장인이 되어서다. 2009년 그는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둔촌 주공아파트로 잠시 ‘귀향’했다. 마침 치솟던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로 접어들기 직전,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논의가 발 빠르게 진척될 때였다.

“재건축 얘기가 나오면서 아파트 값이 엄청나게 올라있었다. 재건축·철거가 실감 나면서 이번에 떠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향수(鄕愁)가 출판으로 이어진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들의 추억을 되찾아주기 위해 구글이 마련한 ‘미래에의 기억(Memories for the future)’ 프로젝트가 그의 눈에 띈 것이다. 지진이 휩쓸고 간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삶의 터전만이 아니었다. 폐허 속엔 피해자들의 소중했던 추억까지 묻혀버렸다. 이씨는 “지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찾고 싶어 하는 건 사진 한 장처럼 기억이 담긴 물건이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을 위해 구글은 지진 이전 피해 지역에서 수집된 스트리트 뷰를 제공했다. 사람들은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했다. 피해자들이 아름다웠던 고향 마을을 기억하고 행복했던 추억을 잊지 않도록, 그래서 미래로 나아가는 힘을 지켜갈 수 있도록 보내는 응원이었다.

이씨는 “자연재해는 아니지만 나의 ‘고향’이 영원히 사라지기 전에 같은 공간을 공유했던 사람들과도 추억을 모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겨울을 나면서 만든 잡지 속엔 아파트 공터에서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 옛날 아파트에서만 볼 수 있는 연기 피어 오르는 중앙난방 굴뚝, 투박하고 색이 바랜 옛날식 놀이터 등 한 번이라도 둔촌주공아파트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가슴 뭉클할 장면들이 담겼다.

예정된 이별 …슬프지만 정성껏 배웅하리라
독립잡지의 성격상 초판으로 500부만 찍은 데다 일반 서점에선 팔지도 않는데 반응이 적지 않다. 추억을 나누기 위해 커다란 단지의 산책로 지도를 보내온 이도 있고, 단지 내에 있는 ‘국민학교’의 성적통지표·시험지 등 깨알 같은 사료(史料)를 보내온 사람도 있다. 이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영화감독은 아파트의 마지막을 영상으로 남기겠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겠다는 일러스트레이터도 있다. 둔촌주공아파트 출신들이 모여 만든 인디밴드 ‘얄개들’과도 연락이 닿았다. 이씨보다 먼저 ‘고향’ 풍경을 사진 찍어 음반 커버로 사용해 온 또 다른 ‘아파트 키드’들이다.

“이젠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 봐도 나오는 건 부동산 정보뿐”이라는 이씨의 말처럼 아파트는 시세·거래·투자 같은 부동산 용어로만 수식된다. 하지만 아파트가 사고파는 물건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씨가 일깨워준 셈이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가 특정한 한 아파트 단지를 다루고는 있지만 비슷한 시기와 지역에 지어진 대단지 아파트 키드들이 공유하는 추억과 감성은 유사한 데가 있다. 실제 이씨에게도 잠실주공·개포주공·반포주공 아파트 등 다른 아파트에 살았던 이들이 “나도 비슷한 추억을 갖고 있다”며 반응을 보내왔다. 대부분이 30·40대, 19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건설된 아파트의 주차장이 아직은 텅 비었을 때 유년기를 보낸 세대다.

이들 아파트뿐 아니라 1970년대 이뤄진 주택건설의 70%는 2000가구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에 집중됐다. 60년대 서울 인구가 245만 명에서 550만 명으로 두 배 이상 늘면서 정부가 공격적인 주택정책을 세웠기 때문이다. 마포·동부이촌동 등 서울 도심부에 선구적으로 지어지던 아파트가 새로운 땅을 찾아 한강 이남으로 건너왔다.

‘주택건설 180일 작전’, ‘하루에 100가구씩 짓기’라는 구호와 함께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대단지가 눈 깜짝할 새 건설됐다. 2만 가구에 이르는 잠실주공아파트 공사가 28만 명을 투입한 끝에 2년 만에 마무리됐고, 80년대 초반까지 반포주공·잠실주공·잠실시영·둔촌주공·개포주공·가락시영 아파트 등 7만 가구가 넘는 아파트가 정부 주도로 건설됐다. 이때 새로운 주거문화 안으로 들어온 이들은 주로 도심으로 진입할 만큼 여유롭진 않지만, 대학교육을 마친 ‘화이트칼라’의 젊은 부부였다. 그곳이 잠실이든, 반포든, 둔촌동이든 새 주거단지에 지어진 10평~30평형대 중소형 아파트는 미래의 중산층을 키우는 둥지였다. 각기 다른 동네의 대단지 아파트에서 자란 이들이 비슷한 정서를 가졌다며 『안녕, 둔촌 주공아파트』를 반가워하는 이유다.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공공건축가로 위촉된 한양대 정진국(건축학부) 교수는 “함께 살면서 자연스럽게 소통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좋은 건축”이라며 “살던 곳에 애착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둔촌주공아파트는 좋은 건축의 한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재건축을 통해 새로운 소통이 활성화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이미 정해진 이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그 모습을 담는 작업은 아름다운 작별을 위한 의식과도 같다.

이씨는 “사랑하는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찍는 것 같은 마음으로 책을 펴냈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을 예쁘게 잘 담고, 슬프고 아쉽지만 정성껏 배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말이다.

조만간 2호를 발행하는 『안녕, 둔촌 주공아파트』는 아파트가 철거될 때까지 계절마다 만들어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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