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로벌 아이] 좋은 비서실장이 좋은 대통령을 만든다

중앙일보 2013.09.14 00:30 종합 30면 지면보기
박승희
워싱턴총국장
지난 화요일 워싱턴의 유서 깊은 건물 앤드루 멜런 오디토리움에선 역대 미국 대통령 비서실장 5명이 모였다. 조시 볼튼(아들 부시), 존 수누누(아버지 부시), 케네스 두버스타인(로널드 레이건), 잭 왓슨(지미 카터), 제임스 로버트 존스(린든 존슨) 등이었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은 건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영을 시작한 네 시간짜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대통령의 게이트키퍼(수문장)’였다. 현재 생존하고 있는 대통령 비서실장은 20명. 이들로부터 그 시절 대통령의 의사결정 과정과 비화 등을 듣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론칭 행사에서 만난 이들은 시대와 대상을 달리한 비서실장이란 직책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았다. 독설가인 존 수누누는 영국 처칠 총리의 발언을 인용해 “좋은 대통령은 어려운 결정을 기꺼이 하는 사람이고, 나쁜 대통령은 항상 결정을 피하고 미루는 사람”이라고 했다. 적시하진 않았지만 시리아에 대한 군사작전 결정권을 의회에 넘긴 오바마 대통령이 표적이었다.



 요즘 미국 정치학계에선 ‘Chief of Staff’로 불리는 대통령 비서실장 탐구가 한창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좋은 대통령을 만드는 첫째 조건이 좋은 비서실장에서 비롯된다는 믿음에서다. 어디 대통령뿐인가. 좋은 리더 옆에는 늘 좋은 참모가 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유행했던 우스갯소리가 있다. 클린턴은 참모들이 너무 일정을 빡빡하게 짠다고 불평을 했다. 그래서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자유시간을 늘렸다. 백악관 인턴인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이 일어난 건 그 직후였다고 한다.



 늘 외로운 결정을 해야 하는 대통령에게 비서실장이란 존재는 큰 위안이다.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은 “비서실장 없는 대통령은 상상할 수도 없다”며 “결정을 할 때 생각을 걸러주는 역할을 하는 게 비서실장”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시리아에 대한 군사작전 결정권을 의회에 넘기기로 결심한 뒤 제일 먼저 데니스 맥도너 비서실장을 불러 로즈가든을 산책했다. 미 언론들이 지금 맥도너 비서실장 등에게 비판의 화살을 쏟아붓는 이유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최고경영자(CEO), 매니저, 심리치료사 등 1인 다역을 해야 하는 비서실장이란 자리는 부담스럽고 피곤하다. 역대 최고의 비서실장으로 꼽히는 제임스 베이커조차 “비서실장을 두 번이나 하다니… 내가 어리석었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좋은 비서실장은 어떤 사람인가. 조지타운대의 스티븐 웨인 교수는 다섯 가지를 꼽았다. ①워싱턴(의회)을 꿰고 있어야 한다 ②대통령을 ‘노(NO)’로 끊을 수 있어야 한다 ③대통령의 약점을 늘 경계해야 한다 ④너무 설치지 말아야 한다 ⑤선량하고 정직한 중개인이 돼야 한다.



 한국 정치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공교롭게도 비서실장이 바뀐 뒤라 시선이 쏠리고 있다. 웨인 교수는 부록으로 한 가지를 보탰다. 비서실장은 표적이 돼선 안 된다.



박승희 워싱턴총국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