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논쟁] 한·일 정상회담 필요한가

중앙일보 2013.09.14 00:28 종합 2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한·일 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외교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과 대화를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나섰다. 이에 대해 “양국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선 두 나라 정상이 만날 필요가 있다”는 의견과 “일본의 과거사 인식 문제 등으로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반론이 부닥치고 있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등지는 기간 길어지면 갈등만 깊어진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일본연구소장
역사 인식 문제로 경색된 한·일 관계가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일 정상이 취임하고 나서 얼굴 한 번 마주 보지 않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9월 초 러시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 때도 격식을 갖춘 만남을 가지지 못했다. 일·중 정상이 5분이라도 만나면서 한·일 정상회담은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양국의 현안이 되고 있는 쟁점과 인식을 감안하면 일본에서 성의를 보이기 전에 제대로 된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어렵다는 주장에 공감이 간다.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 인식이 퇴행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아베 총리가 싱가포르와 필리핀에서 한·일, 한·중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나치’ 발언과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상의 “민도가 낮다”는 발언이 찬물을 끼얹었다.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자제했지만, 종전기념일 행사에서 지난 20여 년간 지속적으로 표명된 사죄와 반성의 뜻을 밝히지 않는 반쪽짜리 역사 인식을 드러냈다. 이러한 일본의 현재 모습에 면죄부를 주거나 눈감고 슬쩍 넘어가는 식의 봐주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정치적 돌발 변수가 없는 한 앞으로 3년간 총리직에 남아 박근혜 대통령의 상대방이 될 공산이 크다. 그의 역사 인식이 총체적으로 개선되길 바라면서 전략적으로 인내하고자 한다면, 일본과는 상당 기간 등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 서로의 오해와 불신의 골은 깊어 가고,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상대를 비난하는 움직임은 더 거세질 수 있다. 양국 간 시민 교류와 경제 교역은 하향 곡선을 그을 것이다.



 일본은 우리에게 마음 편한 친구는 아니지만, 이사 갈 수도 없는 이웃이다. 불편한 이웃이라고 등지고 외면하며 사는 것은 성숙한 관계가 아니다. 일본 정치인들의 일그러진 역사 인식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일본 정치권이 모두 아베 내각의 인식을 공유한 게 아니다. 지난달 열린 한·일포럼에 일본 여야의 유력 정치인들이 참가했지만 그들의 역사 인식은 결코 비뚤어지지 않았다.



 일본 국민과 정치인을 구분해 보자는 박 대통령의 경축사에 주목하고 싶다. 일본 정치인이 싫다고 해서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 국민들에게까지 일본을 경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줄 필요는 없다. 만약에 아베 내각의 역사 인식이 우리의 생각과 거리가 있다면 직접 만나서 생각을 전달하는 것도 방법이다. 일본과 등지고 살 게 아니라면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대화 없는 관계 진전은 있을 수 없다.



 한·일 양국 정상은 10월에 APEC, ASEAN+3 등 다자 무대에서 마주쳐야 한다. 흉금을 터놓고 양국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본격적인 정상회담에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다자회의 무대에서의 상견례 형식을 갖춘 약식 정상회담까지 미룰 필요는 없다. 정상들이 만나 현안을 해결하는 지혜를 찾자고 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발걸음을 내딛지 않을 것이다. 정상이 만나 물꼬를 트면 현안을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움직일 것이다. 만남을 회피하면 강경론이 고개를 들 것이다. 한·일 관계를 갈등 국면으로만 가져가는 것은 서로에게 부담이다. 이웃 나라의 정상으로서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작업을 가동시키는 것은 외교의 기술이지 수치가 아니다.



역사인식 변화 없는 한 신뢰 회복 어렵다



김영환
국회의원
한일의원연맹 부회장
우리 외교의 중심축인 4강 정상외교에서 일본만 제외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을 제쳐놓고 베트남과 먼저 정상회담을 개최한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새 정부 출범 후 6개월이 지났고 북한과도 관계개선이 시작됐는데 한·일 정상회담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6월,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4월 일본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한 바 있다. 모두 취임 직후였다.



 한국과 일본은 근현대사에서 적대와 친선이라는 애증의 역사를 갖고 있다. 식민지배의 어두운 과거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국교정상화로 선린우호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지금 한·일 관계는 정치·외교적으로 최악의 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일 양국 공동조사에서 “양국관계가 좋다”는 응답이 우리 국민은 2007년 37%에서 2013년 17%로, 일본 국민 역시 72%에서 18%로 낮아졌다.



 일본은 우리에게 교역량 세계 3위, 해외투자 14위의 국가다. 작년 인적 교류가 566만 명으로 해외출입국자 비중에서 서로 간에 세계 1위인 나라다. 일본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이고 경제적·안보적으로도 긴밀히 협력해야 할 중요한 우방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정상회담은 시기상조다. 아니,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왜 그런가?



 우선 아직 정상회담 여건이나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 양국 역사에서 상징적 기념일인 지난 8월 15일 일본 아베 총리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사죄를 전혀 하지 않고 넘어갔다. 오히려 내각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우리 국민의 감정만 더 자극했다. 일본이 한·일 정상회담을 희망한다면서도 아베 총리는 “역사 인식을 정상회담 전제조건으로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회담은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일본의 역사 인식에 변화가 없다면 한·일 간의 진정한 신뢰관계 회복과 정상회담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인 ‘비정상의 정상화’는 일본과의 외교관계에도 적용돼야 한다. 일본 정부 지도층은 그동안 앞에서는 사과와 반성을 하면서도 뒤돌아서서는 양국관계를 해치는 망언을 거듭해왔다. 과거사, 역사교과서,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등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 정도다. 언제까지 일본의 뒤통수치기와 이중플레이에 끌려다녀야 하는가. 정상회담이 능사가 아니다. 이 같은 비정상적인 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재발 방지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먼저다.



 셋째, 경제와 안보 협력이라는 국익을 위해 조속한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국익을 위해서는 국민의 자긍심을 바탕으로 국격과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어제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경제와 안보 면에서도 일본과 대등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정도로 국력이 신장됐다. 오히려 일본의 우경화와 과거사 외면이 역내(域內) 국가 간에 역사와 영토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도 일본의 변화를 촉구하고 당당하게 임해야 한다. 일본이 먼저 정상회담을 요청하는 지금이 적기다. 역사 인식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태도변화와 책임성 있는 조치라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원칙을 지키고 성과를 거두는 정상회담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서두를 필요는 없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일본연구소장



김영환 국회의원

한일의원연맹 부회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