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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아버지 시대 역사의 매듭 풀다

중앙일보 2013.09.10 00:49 종합 1면 지면보기
박근혜 대통령이 9일 하노이에 위치한 호찌민 전 국가주석의 묘소를 찾아 헌화했다. 박 대통령이 묘소 입구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라고 쓴 리본의 끝을 조화에 붙이고 있다. 리본 끝을 조화에 붙이는 것은 베트남의 전통 헌화 예절이다. 조화는 베트남 토종 국화과 식물인 `호아따이방`으로 만들었다. [하노이=최승식 기자]


검은 재킷, 검은 치마를 입고 검은 구두를 신은 박근혜 대통령이 9일 베트남의 국부(國父) 호찌민 전 국가주석의 묘소 앞에 섰다. 앞서 베트남 의장대가 노란색 국화과 식물인 ‘호아따이방’ 수백 개로 장식된 조화(弔花)를 묘소 앞에 놓았다. 조화엔 한글과 베트남어로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라고 쓰인 빨간 리본이 달려 있었고, 박 대통령은 조화 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90도 가까이 굽혀 리본의 끝을 조화에 붙였다. 베트남식 헌화 예절에 따른 것이다. 그러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는 적군의 수장이었던 호찌민 전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묘소 안쪽으로 들어가 목례를 했다. 묘소 안에서도, 밖에서도 박 대통령의 표정은 엄숙했다.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엄숙한 침묵’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박 대통령, 호찌민 묘소 참배
박정희 적이던 베트남 국부
묘소에서 발언 일절 않고
현지 전통예절에 맞춰 헌화



 “말은 여러모로 정치적 해석을 낳는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에 베트남 전쟁에 대한 얘기를 일절 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헌화와 참배는 행동으로 보여준, 그 자체가 강한 화해의 제스처다.”



 실제로 1992년 수교할 때도 베트남은 과거사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집권 이전엔 입장이 달랐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부총재 시절이던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쩐득르엉 당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한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사과를 하자 반박 성명을 냈다. 그는 “대통령의 역사인식에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고 참전용사들의 명예를 이토록 손상시켜도 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이 발언은) 6·25전쟁 참전 16개국 정상들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북한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한 것과 같은 엄청난 일”이라고 반발했다. 이후에도 현충일 등에 베트남전 참전 용사에 대한 격려는 거의 빠지지 않았다.



 그런 박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이날의 헌화와 참배, 그리고 묵언(默言)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베트남 전쟁으로 얽힌 양국의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 미래를 보자는 메시지라고 청와대 참모들은 강조했다. 일본에 대한 압박의 의미도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 대한 한국과 베트남의 성숙한 입장과 잘못된 역사인식에 갇혀 있는 일본과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박 대통령은 호찌민 묘역 참배 후 쯔엉떤상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회담 후 호 전 주석이 1945년 독립투쟁을 시작할 때부터 사용했던 작은 나무책상과 침대, 책과 시계 등이 보존돼 있는 거소도 둘러봤다.



베트남 주석, 호찌민 집에 외국 정상 첫 에스코트



역대 대통령 가운데 1996년 베트남을 첫 공식방문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과거사에 대한 언급은 물론 호 전 주석의 묘소 참배도 하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묘소 참배만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마음의 빚이 있다”고 한 뒤 시신이 안치된 묘역에 들어가 묵념했다. 그러나 거소까진 방문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묘소까지만 참배했다.



박 대통령의 묘소 헌화에 베트남도 화답했다. 쯔엉떤상 주석은 정상회담 후 박 대통령을 호 전 주석의 거소까지 직접 에스코트했다. 베트남 주석이 외국 정상을 직접 에스코트해 호 전 주석의 거소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묘역 참배 전날 박 대통령은 양국 기업인들을 만나 딱 한 차례 호 전 수석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 주석께선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모든 변화하는 것에 대응한다’는 뜻의 ‘지벗비엔 응번비엔(以不變 應萬變)’이라는 좌우명을 갖고 있었다고 알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우정과 신뢰가 변치 않는다면 어떤 변화와 도전도 능히 함께 대응해나갈 수 있다.”



하노이=신용호 기자, 강태화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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