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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우리, 추락을 파종하는 걸까?

중앙일보 2013.09.10 00:31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여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이석기와 그의 부류들이 행한 짓거리에 혀를 차다가 불쾌해하다가 이제 그만 저 국가적 소동에 넌더리가 났을 즈음 가을은 성큼 와 있었다. 1980년대에 뿌려진 모순의 씨앗이 독버섯처럼 번져 결국 권력 교두보를 구축하고 중심부를 넘보고 있었던 거다. 이젠 대중적 혐오가 깊어져 사란(思亂) 정도에 그칠 종북세력이 이 땅에 자생한 이유는 전두환 정권의 강성 독재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환기하고 싶다. 역사는 뿌린 대로 거둔다. 종북세력은 사그라질 터지만, 우리 자식들의 미래를 짓밟을 더 심각한 씨앗들을 뿌리는 현재의 풍경들로 눈을 돌려야 한다.



 현대자동차 파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망가진 디트로이트와 울산을 겹쳐 떠올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기본급과 복리후생비가 뒤섞인 통상임금 공방이 법정싸움으로 번진 한국, 번창하던 산업기지가 조만간 잡풀이 무성한 공터로 변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경기는 최악인데 징세(徵稅)에 열을 올리는 정부, 사분오열된 대오를 야영 노숙으로 수습해 보려는 야당의 길거리 정치로는 한국의 막힌 통로를 뚫지 못할 거라는 비관이 앞섰다. 모두 자식들의 미래를 좀먹는 씨앗을 파종한다는 점에서 공통이다.



 돈이 돌기를 멈췄다. 서민들의 정서는 돈가뭄과 함께 말랐다. 집 근처 호프집, 직장인들로 북적일 밤시간 홀에는 주인과 친구가 달랑 앉아 있었다. 인근 회사들에서 야근이 없어진 탓이란다. 지난봄부터 침몰하던 경기는 급기야 여름 장사를 사정없이 망가뜨렸다. 백화점에는 그런대로 고객들이 붐볐으나 인근 상가에는 발길이 뜸했다. 친척 혼사 선물을 사러 들른 귀금속가게 주인은 그날 공치기를 면했다고 반겼다. 저녁 7시 손님인 내가 개시를 해준 덕이었다. 누구는 늦은 오후 휴대전화를 바꾸러 찾은 용산전자상가에서 개시를 해줬다고도 했다. 통계청은 국민총소득 증가율이 근래 제일 높아졌다고 통계적으로 발표했지만, 임차료를 내는 사람들은 안다. 제때 임차료 내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게 서민들이 몸으로 겪는 실물경기다.



 한국 견학차 방한한 신흥국 기자단 강의, 그들은 한결같이 경제성장의 비법을 물어왔다. 자국에 비법을 전수해 빈곤 탈출이 소원인 이 계몽적 민족주의자들은 교육열, 국가의 지원시스템, 치열한 경쟁, 성취동기 등 사회학적 요인들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향후 경쟁력의 자원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 앞에서는 답이 궁색해졌다. 그들도 알아챘을 것이다. 나의 설명이 엉키고 있다는 것을. 새로운 도약을 향한 국민적 열의보다 이익투쟁에 찢긴 풍경을 더 많이 목격했던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길이 없었다.



 신흥국들이 부러워하는 우리는 휴대전화, 자동차, 조선 등 응용경제의 총아 외에 눈이 번쩍 뜨이는 혁신상품을 내놓은 적이 없다. 국가경쟁력은 하락 일로다. 헤리티지재단은 31위에서 34위로, 세계경제포럼은 19위에서 25위로 추락한 한국의 금년 성적표를 발송했다. 추락의 가장 큰 원인은 영역별 격차에 숨어 있다. ‘제품’(하드웨어)은 최상위권인데 ‘제도’(소프트웨어)는 최하위권, 두 영역을 합한 점수가 날로 떨어진 거다. 낙후된 금융, 호전적 노조, 정부규제, 정치 불신, 경직된 고용체제에서 브라질·인도만도 못하다는 평가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혁신의 동력은 사회제도 즉 소프트파워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우리는 다 같이 합심해 제도가 자랄 토양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아니 그런 제도가 뭔지 모르고, 앞으로도 그렇게 투박하고 거칠게 살 예정이다.



 디트로이트 노동자들은 1980년대에 일본차를 부쉈고, 90년대에는 한국차를 부쉈다. 분풀이였다. 속은 후련했겠지만 자식들이 먹고살 생계의 터전을 때려부쉈다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작년 한 해 동안 기업은 급속히 한국을 빠져나갔다. 한국은행은 해외투자율이 작년에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발표했다. 노동자, 정부, 국민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자본의 생존본능이다. 공동화란 다른 것이 아니다. 기업이 떠나고, 노숙자가 떠돌고, 상점이 문을 닫은 그 음산한 풍경 속에서 작동을 멈춘 휴대전화, 자동차, 가전제품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우린 지금 다 같이 추락의 씨앗을 파종하고 있다! 이익투쟁에 나선 강자들이 부르는 오늘의 승전가는 내일 자식들의 신음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야말로 하드웨어에 매진해온 ‘반개(半開)의 한국’이 꼭 되새겨야 할 명심보감이다. 제도혁신이 문명개화의 목표라면, 한국은 아직 반만 개화한 ‘반개의 나라’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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