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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방해 받지 않고 가을 거리를 호젓이 걷고 싶다

중앙일보 2013.09.10 00:31 종합 31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지난 토요일 오후 서울 청계천에서 영화감독 김조광수(48)씨와 김승환(29)씨가 국내 최초의 공개적인 동성 결혼식을 올렸다. 외신들도 ‘보수적인 한국에서 열린 상징적인 결혼식’이라며 관심을 보였다. 우리 풍토에서 어떤 이는 그저 희한한 구경거리로, 다른 이는 성(性)소수자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한 의미 있는 계기로, 또 다른 이는 세상이 결국 말세로 접어들고 말았다는 착잡한 심정으로 결혼식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생각은 자유니 거기까진 좋다. 그러나 몇몇 기독교 신자들이 결혼식을 한때 물리적으로 방해하고 오물 투척 소동까지 벌인 것은 잘못됐다. 남의 행사에 오물을 뿌린다면 자신들의 집회가 그런 일을 당해도 좋다고 인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



 원체 물렁하게 생겨서인지 머피의 법칙에 따른 나만의 착각인지 몰라도,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이 자주 접근하는 편이다. 광고 전단 아주머니는 많은 행인 중에 유독 나를 점찍고, 길 헤매던 이도 선뜻 다가와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달라 한다. 도(道)와 기(氣)를 연마하는 분들은 나의 비상한 천품(天稟)을 한눈에 알아본다. 특정 종교인에게는 영락없이 길 잃은 한 마리 어린 양이다. 지하철에선 구구절절 딱한 사연이 적힌 사각 마분지가 내 무릎 자리를 건너뛰는 법이 없다. 거리시위를 벌이는 이는 몇 발짝이라도 기어코 따라와 유인물을 안긴다.



 좁은 공간에 모여 복닥거리던 농경사회의 유산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는 서구와 달리 남에 대한 물리적·신체적 개입을 별로 꺼리지 않는다. 그러나 싫을 때는 정말 싫은 법이다. 석 달 전 서울 용산경찰서에 폭행 혐의로 입건된 50대 여성의 경우를 보자. 당시 보도에 따르면 집 부근 교회 신자들이 1년 내내 전도한다며 집에 찾아와 스트레스가 쌓였다고 한다. 그날도 신도 3명이 문밖에서 “아르바이트생인데 설문조사에 응해 달라”며 꾀었다. 문을 열자 성경책과 포교 영상물을 들이밀고, 휴대전화로 전도하는 모습을 촬영까지 했다는 것이다. “나도 기독교인이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시비가 벌어진 와중에 교인 중 한 여성의 어깨를 밀치자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는데, 과연 누가 더 잘못한 것일까.



 서울대 학내에 최근 ‘전도 퇴치 카드’라는 게 등장했다고 한다. 한 무신론 동아리가 일부 종교 신자들의 지나친 전도활동을 거부하자며 카드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배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와 생각의 자유를 존중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니 말은 맞는구나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종교를 믿지 않는 무신론 동아리라는 점이 신경 쓰인다. ‘믿으라’며 접근하는 행렬에 ‘믿지 말라’는 이들까지 가세한 모양새 아닌가. 이래저래 어렵다. 대한민국 길거리에는 충만한 사명감으로 무장한 이들이 너무 많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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