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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누구에게 빛나는 별로 기억될 수 있을까?

중앙일보 2013.09.10 00:28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동률
서강대MOT대학원 교수
매체경영
“우리가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았을 때 그 별은 이미 죽었는지도 모른다.” 별에 관해 기억하고 있는 가장 슬픈 말이다. 고작 스물,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한 프랑스의 천재작가 레몽 라디게(1903~1923)가 말했다. 자전적 소설 『육체의 악마』로 유명한 그는 장 콕토의 동성 연인. 별빛이 우리 눈에 도착하기까지는 수억 광년이 필요하고 그 오랜 시간 동안 별이 이미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청춘의 한때 읽은 구절이지만 가슴이 시렸다. 우리도 언젠가 별처럼 실체는 사라지지만 누구에게 빛나는 별로 기억될 수 있을까?



 팔월의 끝자락, 오대산 월정사로 나홀로 템플 스테이를 다녀왔다. 여름의 끝, 북적이던 전나무숲 산책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나선 깜깜한 새벽 3시, 산사의 깊은 밤은 반팔 차림으로 견뎌내기에는 너무 추웠다. 그 차가운 밤공기를 뚫고 절집 마당에는 별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는 것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속의 양심’이라던 칸트의 묘비명이 실감나는 밤이었다.



 유년 시절 산골에서 자란 나는 별들을 유달리 신기해 했다. 오랜 시간, 달에는 계수나무가 있고 월궁항아가 방아를 찧는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1969년 아폴로 11호의 우주인이 달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그 어린 나이에도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을 느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로 시작되던 할머니의 자장가가 자꾸만 ‘뻥’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별을 신기해 하던 나는 한때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그런 시절 가장 큰 의문은 태양계, 나아가 은하계에 있을지 모르는 외계인과 도대체 무슨 수로 통하느냐는 것이었다.



 이십대 어느 날 이 같은 궁금증은 풀렸다. 그저 폼으로 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던 타임 잡지 속에서 우연히 접한 보이저 관련 기사를 통해서다. 알려진 대로 1977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드넓은 우주 공간을 탐험하기 위해 보이저 1, 2호를 잇따라 발사했다. 지구 생명체의 모습을 담은 그림과 지상의 여러 소리, 외계인에게 드리는 55개 언어로 된 인사말(한국어 포함), 발트하임 당시 유엔 사무총장과 카터 미 대통령의 메시지를 담은 동판 레코드를 탑재했다.



 그 기사의 압권은 외계인에게 지구인이 평화를 사랑하는 생명체라는 것을 알리는 소통의 수단으로 바흐의 음악을 택했다는 것이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다. 보이저는 브란덴부르크를 전자파로 해석해 은하계를 향해 쏘면서 캄캄한 어둠 속을 날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외계인이 이 음악을 접하게 되면 녹색별에서 사는 지구인이 평화를 사랑하는 생명체임을 깨닫게 한다는 타임지 기사는 나를 황홀하게 했다.



그날 이후 가끔 뉴스에 등장하던 보이저가 보내온 태양계의 사진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이 기계 덩어리 무인 우주선을 친구처럼 여기며 걱정하곤 했다. 당연히 그날 아침은 브란덴부르크를 온 집안이 쿵쿵 울리도록 크게 틀어 놓고 전곡을 들었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최근 접한 내 친구(?) 보이저의 소식은 나를 우울하게 한다. 36년간 항해하던 보이저 1호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NASA가 보이저 1호가 드디어 태양계 경계면에 도달했다고 발표한 데 이어 최근 마크 스위스닥 미국 메릴랜드대 천체학 교수팀은 보이저 1호가 이미 태양계를 벗어났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보이저 1호가 항해하고 있는 영역은 인간이 우주선을 쏘아올린 이래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 태양계를 벗어나 칠흑 같은 은하계에 홀로 항해하고 있을 보이저를 걱정하는 나의 마음은 안타깝다.



그런 나에게 별은 더 이상 천문학의 대상이 아니다. 나에게 별은 이제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래서 보이저를 걱정하며 별을 헤는 밤은 안타깝다. 사무치게 사랑해 보지 못한 사람은 밤하늘의 빛나는 별을 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나는 살아오는 동안 몇 번이나 별을 보며 살아온 것일까? 계절이 지나가는 밤하늘에 별들이 가득하다.



김동률 서강대MOT대학원 교수·매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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