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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국가 민심부터 녹였다 … 시진핑 '강연 외교'

중앙일보 2013.09.10 00:18 종합 18면 지면보기
“한 조각 토지 위의 역사는 바로 그곳 민초의 역사다.”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의 속담이다.


취임 뒤 6개월간 해외 연설 5회
카자흐·멕시코·러·콩고 큰 호응
현지 속담, 경험담으로 파고들어
중국이 의도한 협상결과 이끌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7일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대에서 이 속담을 인용하면서 강연을 시작됐다. 이어지는 시 주석의 말은 더 걸작이다. “2100년 전 중국의 장건(張騫)이 이곳에 와 중국과 서역을 잇는 비단길을 개척했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비단길 경제권을 만들어야 하며 중국과 중앙아시아 모두가 번영하는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학생들은 물론 카자흐스탄 정부 관리들까지 기립박수를 보냈다. 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잇는 인구 30억 규모의 실크로드 경제권을 만들자는 중국의 장기 국가전략을 정상회담이 아닌 대학 강연에서 제시한 것이다. 장건은 한무제의 명을 받아 중앙아시아 각국과 외교·문화·교역의 물꼬를 튼 인물이다.



 시 주석은 또 중국 하이난(海南)대에서 유학 중인 카자흐스탄 출신의 루스란 학생을 거론했다. 희귀 혈액형인 RH음성 피를 가진 그가 2009년부터 수없이 헌혈을 해 같은 피를 가진 많은 중국인들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현지 언론의 우호적 보도가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그 덕분만은 아니겠지만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결과도 풍성했다. 카자흐스탄에 매장된 300억 배럴의 원유와 2조4000억㎥ 규모의 천연가스를 공급받기로 합의했다. 중국의 골칫거리인 신장(新疆) 위구르족 무장독립세력에 대한 공동 대처 약속도 받아냈다.



 천밍밍(陳明明) 중국 외교부 공공외교 자문위원은 “시 주석 강연의 특징은 중국의 외교정책을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현지 얘기부터 꺼내고 속담 등을 인용한 뒤 자신의 경험을 말해 현지인들에게 설득력을 더하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전임 후진타오(胡錦濤)·장쩌민(江澤民) 주석과는 다른 점이다. 후 전 주석의 경우 중국 현실과 역사를 소개하는 데 치중했다. 2006년 4월 미국 예일대 강연에서 그는 중국의 인류문명에 대한 역사적 공헌을 소개하고 양국의 협력 필요성을 주장했다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현지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한시를 자주 인용한 장 전 주석 역시 일방통행식이었다. 1997년 하버드대에서 중국 인권 등 현실 문제만 얘기하다 한 학생이 중국 인권을 비판하자 “소음에 개의치 않는다”며 강연을 계속했다. 이후 언론은 그의 뚝심을 집중 조명했다.



 시 주석은 현지 얘기부터 강연을 풀어가는 현장맞춤형이다. 현지 청중과의 소통을 중시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공공외교 기법인 셈이다. 그는 취임 6개월 만에 다섯 차례 해외에서 강연을 했다. 지난 6월 멕시코 방문 때는 상원 연설을 통해 중국과 멕시코의 공동 미래 발전 원년을 선언했다. 당시 “나는 축구광이다. 중국 축구가 딱 한번 월드컵에 나가봤는데 당시 감독이 멕시코 국가대표 감독을 했던 보라 밀루티노비치(세르비아 출신)”라고 말해 의원들의 환호를 받았다. 3월 러시아 국제관계학원 강연 때는 청년 시절 문학에 심취했다는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고 톨스토이와 솔제니친 등 세계적인 러시아 문호들을 일일이 거명해 러시아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이어 “큰 배가 멀리 간다”는 러시아 속담을 인용하며 양국의 전면적 협력관계를 이끌어냈다. 이 밖에 그는 콩고 의회연설에서 ‘전진하자 아프리카, 우리가 너의 승리의 노래를 듣게 해 다오’라는 내용의 아프리카 시인의 시를 인용하며 중국과 아프리카의 새로운 우호시대 개막을 선언했다.



 이처럼 시 주석의 호소력 있는 해외 강연과 연설 원고 작성은 보좌진과 외교부의 합작품이다. 강연 수개월 전부터 기본 자료를 준비하는데 필요하면 현지 확인도 병행해 강연에 담을 내용을 선별한다. 수집된 자료에 근거해 연설문 초안이 작성되면 외교부 검토를 거쳐 시 주석에게 올라간다. 왕후닝(王<6EEC>寧·58), 리수레이(李書磊·49) 등 문재들의 손을 거친 뒤 시 주석이 직접 손질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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