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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기로에 선 강덕수 회장 … STX조선 대표서 물러나

중앙일보 2013.09.10 00:01 경제 1면 지면보기


이변은 없었다. 9일 오후 서울 남대문로 STX 남산타워에서 열린 STX조선해양 이사회는 1시간여 만에 끝났다. STX조선 이사회는 이날 예정대로 강덕수(63·사진) 회장을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강 회장은 이날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채권단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 회사 내부에서 “차라리 법정관리로 가야 한다”며 반발이 있었지만 채권단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 이사회는 이어 경영진추천위원회가 의결한 박동혁(56) 대우조선해양 부사장과 류정형(56) STX조선 부사장의 등기이사 선임을 처리했다.

"지금은 책임 추궁보다 경영 정상화 먼저인데…" 노조·창원상의 반발



 1973년 고졸 사원으로 출발해 부실 계열사를 인수, 재계 12위권 대기업을 이끌어온 강 회장의 ‘샐러리맨 신화’가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다만 강 회장의 강제 퇴진을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부실 경영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시각과 패자 부활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반박이 그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강 회장은 쌍용중공업(현 ㈜STX)을 기반으로 연거푸 인수합병(M&A)를 추진하면서 기업을 키웠다. 그룹이 출범한 지 10여 년 만에 매출 100배, 일자리 75배 성장이 가능했던 것도 이런 이유다. STX가 결정타를 맞은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부터다. 주력인 조선·해운 사업이 흔들렸고, 1조7000억여원을 투입한 STX다롄도 된서리를 맞았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강 회장은 법정관리가 아닌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선택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자신은 ‘관리인 유지 제도’에 따라 대표이사 자리를 지킬 수 있겠지만, 채권이 동결돼 협력업체들은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어서다. 현재 STX조선해양·엔진 등이 자율협약을 맺은 상태다. 하지만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은 지난 3일 강 회장에게 대표이사 및 이사회 의장직을 사임할 것을 요구했다. 빠른 경영 정상화를 위해 전문성과 추진력을 갖춘 외부 전문가 영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산은이 칼을 꺼내자 STX 측은 “채권단이 자율협약 취지를 무시하고 월권행위를 하고 있다” “지금 회사를 살릴 적임자는 강 회장뿐”이라며 맞섰으나 소용이 없었다.



 사실 채권단도, 정부도 처음엔 강 회장 측에 우호적이었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신제윤 금융위원장,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은 본지 기자와 수차례 만나 “STX는 강덕수 체제로 간다. 대안이 없다”고 강조해 왔다. 경영 부실에 대한 책임은 있지만 누구보다 회사 사정을 잘 알고 위기를 극복할 인물로 강 회장이 적임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산은과 STX 간 관계가 틀어지면서 분위기는 180도 달라진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6월 STX팬오션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을 한 것이다. 올 4월부터 산은이 실사를 하면서 STX팬오션의 산은 인수는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부실이 심각하다는 이유로 산은이 등을 돌렸고, STX팬오션이 법정관리를 결정하면서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날 김용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강 회장 사임 요구는) 채권단이 기업회생에 제일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해 내린 결정”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현장의 목소리는 사뭇 다르다. 강 회장이 이뤄낸 성과를 전면 부정할 것이 아니라 기업을 정상화하고 다시 일어설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STX조선 노동조합이나 지역 경제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소식지를 통해 “지금 책임 추궁보다 중요한 것이 경영 정상화”라며 “(강 회장을 퇴진시키는 것은) 오히려 무책임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창원상공회의소는 성명서를 내고 “자율협약 체결 후 STX조선은 조업률 80%, 5만 DWT급 탱커선(약 400억원) 수주 등으로 정상화가 진전되고 있는데 대표이사 신규 선임으로 이해 당사자 간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패학 전문가인 영산대 심형석(경영학) 교수는 “단기적으로 봐서 STX의 확장 전략이 실패한 것은 맞지만 세계 경기 악화, 업황 침체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강 회장에게 지우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특히 강 회장은 배임 혐의도 없다”며 “재무 위기 때 기존 오너의 경영권을 유지했던 금호아시아나·팬택 등 전례를 비춰 봐서도 STX에게 유독 가혹하다”고 덧붙였다.



 현대중공업 사장을 지낸 부산대 유관홍(조선공학) 교수는 “젊은이들에게 ‘제2의 강덕수 신화’를 만드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강 회장에게) 재도전 기회를 줘야 한다”며 “무엇보다 그는 위기관리에 성공했던 경영자”라고 강조했다. 강 회장이 쌍용중공업이라는 ‘난파선’을 구해낸 경험을 높게 평가한다는 얘기다. 쌍용중공업에 구원투수로 투입된 후 강 회장은 수주 영업력을 대폭 보강해 세계 4위 조선업체로 키워냈다. 익명을 원한 전직 조선업체 대표는 “채권단은 자금 관리, 기존 경영진은 수주·생산에 전념해 기업을 살리는 게 자율협약의 기본 취지인데 산은의 결정은 너무 일방적이었다”고 지적하며 “앞으로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 누가 자율협약을 체결하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채권단이 STX 회생을 주도할 인물로 대우조선 출신인 박동혁 부사장을 선임하면서, 업계에서는 대우조선이 STX 위탁 경영을 맡을 수 있다는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상재·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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