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떡갈비 증편 버거 도미 된장구이 … 외국인 입맛 사로잡다

중앙선데이 2013.09.06 23:37 339호 14면 지면보기
독설가 셰프는 어디로 갔을까. 지난달 29일 서울 원서동 궁중음식연구원에서 만난 셰프 강레오(36ㆍ사진왼쪽)는 유난히 겸손했다. 양손을 앞으로 곱게 모은 모습에서 요리 경쟁 TV프로그램 ‘마스터셰프 코리아’ 심사위원의 날카로움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것도 음식이라고 만들었나. 앞치마를 찢어버리고 싶다”며 독설을 뿜던 그가 순한 양이 된 이유는 하나. 스승으로 모시는 한복려(66) 궁중음식연구원장 앞이기 때문이다.

국제행사에서 한식 선보인 강레오와 스승 한복려

사제의 연이 시작된 건 2011년. 강 셰프가 먼저 연구원 문을 두드렸다. 정통 한식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다. 그는 런던에서 프랑스 요리를 중심으로 하는 철저한 양식 셰프로 단련됐다. 설거지부터 시작해 프랑스 요리의 대가 피에르 코프만의 제자가 됐고, 장 조지와 고든 램지 같은 쟁쟁한 셰프들이 있는 런던 레스토랑에서 수셰프(sous chef·부주방장) 자리까지 올라갔다. 귀국 후엔 자신의 레스토랑을 열고 방송에도 출연하며 스타 셰프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내리 헛헛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자꾸 코프만 선생님의 요리를 답습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셰프로서의 정체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어요. 한국인으로서 제 요리의 기준점을 찾고 싶었습니다.”

처음부터 궁중요리에 뜻을 둔 건 아니었다. 유명 한식당은 물론 전국에 흩어진 종갓집도 다녔지만 뭔가 부족했다. 결국 한식의 진수는 궁중요리에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자연스레 한 원장을 떠올렸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인 한 원장은 정통 궁중 한식의 대가다. 조선의 마지막 수라상궁에게 궁중요리를 전수받은 어머니 고(故) 황혜성 선생의 뜻을 이어 지켜 왔다.

한 원장도 새로운 제자를 환영했다. 강 셰프를 ‘레오 씨’라고 부르는 한 원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요즘 젊은 셰프들은 겉멋이 좀 들었어요. 한식의 기본도 모르면서 유학 갈 궁리, 대회에서 상을 타서 취직할 궁리만 하지요. 그런데 레오 씨는 달랐어요. 해외에서 탄탄하게 요리를 배웠는데, 한식의 기본을 제대로 공부하겠다고 온 거지요. 바른 자세를 가진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촘촘한 방송 스케줄과 레스토랑 운영 등 바쁜 탓에 모범생은 못 됐다. 한 원장이 웃으며 “결석이 잦았지만 워낙 열의가 있어서 특별 학생으로 받아준 것”이라고 하자 강 셰프의 귀가 빨개졌다. 정규 강의 시간에 못 맞출 땐 자료와 책을 얻어 공부했다. 요리의 기술뿐 아니라 한식의 역사와 스토리부터 접근했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 정리의궤』를 보며 정조 시대 궁중요리의 맛과 색, 차림새를 익혔다. 흔히 ‘신선로’라 부르는 열구자탕(悅口子湯·‘입을 즐겁게 하는 탕’이라는 뜻)과 궁중에서 여름철 빚던 만두 ‘규아상’을 만들며 한식의 경험치를 늘려갔다.

1 강레오 셰프가 CCF 한식 만찬에 내놓은 문어 편채 발론틴과 탕평채. 유자 거품과 매콤한 간장소스를 곁들였다. 2 떡갈비 증편버거와 파프리카·연근 절임.
그렇게 한식을 파고든 지 3년째. 강 셰프는 1일 자신이 디자인한 한식 코스 메뉴를 선보였다. 영국ㆍ터키ㆍ멕시코 등 세계 각국의 문화계 리더들 모임인 ‘문화소통포럼(CCF) 2013’의 만찬 자리였다. 남산 자락에 자리 잡은 강 셰프의 레스토랑 ‘화수목 바이 강레오’에서 진행된 만찬은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 최정화 대표가 1~3일 서울에서 개최한 CCF의 하이라이트였다.

일곱 코스의 시작은 편채를 응용한 문어 발론틴(ballontine·재료를 둥글게 말아 얇게 썬 요리)이었다. 청포묵과 매콤한 간장소스를 곁들여 입맛을 돋웠다. 육회를 변형한 한국 스타일의 참치 타르타르(tartar·생고기나 날생선을 곱게 다진 요리)에 이어 강 셰프의 야심작 떡갈비 증편 버거가 나왔다. 증편을 얇게 잘라 오븐에 구워 파니니 샌드위치 같은 바삭한 식감을 살려 떡갈비 패티를 넣었고 산뜻한 연근절임을 곁들였다.

첫 번째 메인으론 도미 된장구이에 제철 민물새우 튀김, 가지로 만든 퓨레와 레디시 볶음을 내놨다. 오븐에 구운 뱅어포에 설탕을 뿌려 곁들였다. 두 번째 메인은 불고기 소스로 구운 스테이크에 양면을 구운 흰주먹밥, 우엉 정과와 삶은 호박이 곁들여졌다.

3 디저트인 녹차 크렘브륄레와 라즈베리 소르베.
정식 코스요리인 만큼 디저트도 두 번에 걸쳐 나왔다. 첫 번째는 제주산 녹차를 이용한 디저트 크렘브륄레와 라즈베리 소르베, 두 번째는 한국식 프티 푸르(petit four·한 입 크기의 작은 과자)로 생강을 다져 만든 강란(薑卵)과 서양식 커피 리큐어(liqueur)를 살짝 뿌린 개성 약과를 내놓았다. CCF 참가자로 코스를 맛본 이탈리아인 셰프 파올로 데 마리아는 “양식의 조리법을 정확히 숙지한 셰프가 제대로 만든 현대화된 한식”이라며 그릇을 싹싹 비웠다. 터키 제르모던아트센터 헬룬 피렛 위원장은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조화롭다”고 감탄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침울한 표정이었다. 얼굴을 감싸 쥔 채 “외국인 입맛을 너무 고려해 변형한 바람에 한식다운 한식을 내놓지 못했다”고 했다. 만찬 후 따로 만난 한 원장도 “한식의 원형을 보여줄 수 있는 메인을 하나 정해서 힘을 실어줬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 평했다. 강 셰프는 “메인을 유기그릇에 담은 갈비찜으로 바꾸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강 셰프는 만찬 후 “한식에 뭔가 잘못된 점이 있어서 세계화되지 않을 거라며 한식을 자꾸 변형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식의 기본을 잘 알고 전달을 해야 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변형하려니까 문제라는 게 더 명확해졌습니다. 선생님이 계셔서 다행이에요. 어머니 같으신 선생님 덕분에 요리를 더 진지하게 대하게 됐거든요.”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