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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모름지기거짓을 통해꿈과 진실 말하는 것”

중앙선데이 2013.09.06 23:52 339호 17면 지면보기
ⓒ Eric Fougere
8월 22~24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 2013부산국제광고제(집행위원장 이의자최환진)는 59개국에서 24개 부문 총 1만2079편이 출품된 대규모 행사였다. 본선에 오른 1704편 중 그랑프리 오브 더 이어는 구형 휴대전화를 재활용한 필리핀의 아동전자책 지원캠페인(공익광고부문)과 제일기획의 자살예방캠페인 ‘Bridge of Life’(제품·서비스부문)가 차지했다. ‘Share Creative Solutions, Change the World’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기발한 광고를 활용해 괄목할 만한 경제효과를 거둔 캠페인을 소개하는 창조경제 스페셜 전시와 세계 2위 광고시장으로 떠오른 중국 광고계를 집중 조명한 전시와 강연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이번 행사의 빅스타는 자크 시겔라(79)였다. 필름·라디오·아웃도어 부문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한 그는 세계 6대 글로벌 광고대행사인 프랑스 하바스 미디어 그룹의 부회장이다. 행사장 최고의 인기코너도 자크 시겔라 특별전이었다. 광고의 역사를 새로쓴 그의 대표작들 앞에서 관람객들은 걸음을 뗄 줄 몰랐다.

23일 오후에 열린 그의 세미나 ‘Money Has No Idea, Only Ideas Make Money’ 역시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재킷의 깃을 빳빳이 세운 이 멋쟁이 신사는 ‘노인’이라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정열적이었다. 단상에서 말춤을 추며 젊음을 과시했고,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고 센스 있는 진행으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예정된 40분의 2배인 1시간20분을 넘겼지만, ‘단언컨대’ 단 1초도 지루하지 않았다. 과연 지난 반세기 동안 전 세계 대중의 감성을 이끌어온 ‘광고계의 교황’다웠다. 세미나 직후 그를 만났다. 젊음의 비결을 묻자 24살 연하의 부인이 매일 아침 속삭이는 “당신 참 잘생겼어요. 사랑해요”라는 인사에 용기를 얻어 오랜 애인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그 애인의 이름은 ‘광고’다.

1~3 프랑스의 가장 성공한 광고라 불리는 에비앙 베이비 시리즈 ⓒBETC
길가던 어른들이 쇼윈도에 아기로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춤을 추자 아기들도 똑같이 춤을 춘다. 아기로 돌아간 듯한 기분 좋은 착각을 표현한 이 영상은 지난 4월 3주 만에 유튜브 동영상 2억 뷰를 기록한 생수 ‘에비앙’ 광고다. 프랑스의 가장 성공한 광고로 꼽히는 이 에비앙 광고 시리즈를 만든 이가 바로 자크 시겔라다.

35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광고계에 뛰어든 그가 세계 광고시장을 이끌어왔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1970년대 당시 단순한 제품 프로모션에 머물던 광고를 스토리텔링을 통한 브랜드이미지 구축으로 패러다임을 전환시켰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시트로앵 자동차 광고. 한 남자가 자동차로 세계일주한 이야기를 담은 이 광고는 제품 홍보를 넘어 광고를 통해 사람들의 꿈과 열망을 자극한 첫 사례였다. 그는 “제품 차별화 포인트를 찾는다는 원칙에서 시작했다”고 회고한다. 다른 제품과의 차별점, 즉 브랜드 자산을 스스로 표현할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부여하는 것을 광고의 역할로 봤다는 것이다.

“매체에 실린다고 제품을 다 알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매체가 갖지 못한 힘을 브랜드는 갖고 있고 그것이 브랜드 파워다. 나는 제품을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 가치를 가진 사람으로 의인화시키고자 했다. 캐릭터·스타일을 부여하고 그것을 일관성 있게 유지할 수 있게 하면 그것이 브랜드의 DNA가 된다. 그렇게 되면 브랜드는 우리의 믿을 수 있는 친구가 된다. 코카콜라는 파티를 같이하는 친구 이미지 아닌가. 나이키는 함께 있으면 챔피언으로 만들어 줄 것 같은 동반자고.”

1998년 ‘수중발레 베이비’, 2009년 ‘롤러스케이트 베이비’ 등 발표할 때마다 화제를 모은 베이비시리즈로 에비앙의 브랜드 이미지는 ‘젊음을 마신다’가 됐다. 그는 아기를 이용한 숱한 광고 중 유독 에비앙이 성공한 이유에 광고 성공의 비밀이 놓여 있다고 말한다. “감성을 건드렸고,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 광고를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영국식 광고, 가슴에서 머리로 가는 프랑스식 광고, 머리에서 지갑으로 가는 미국식 광고로 분류하며 최근 트렌드는 ‘가슴에서 가슴으로’ 가는 광고라고 정의한다. 21세기는 인터넷을 통한 정보순환의 시대이므로 전 세계적인 보편적 감성을 건드리면 저절로 전달과 공유가 이뤄진다는 것. “좋은 광고는 감성을 불러일으켜야 하고, 그 감성을 시청자가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에비앙 광고는 이미지가 모든 걸 말해준다. 강렬한 이미지가 있다면 긴 설명이 필요없다는 걸 보여주는 예다.”

4 부산 벡스코 전시장에 마련된 자신의 특별전 부스 중 시트로엥 광고 이미지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자크 시겔라.
감성에 호소하는 한국 광고에 큰 잠재력
그는 한국적 감성광고의 예로 현대차 광고를 들었다. 청각장애인에게 진동으로 음악을 들려주는 쏘나타 광고를 ‘올해 본 자동차광고 중 최고’라 치켜세웠다. “광고는 이제 인본주의를 표방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세계 변화에 촉을 세우고 그 일부가 돼야 한다. 광고 예산의 일부는 사회적 변이를 반영하는 데 집행되어야 한다. 부산광고제의 슬로건도 ‘크리에이티브 솔루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자’ 아닌가. 현대차 광고 역시 이를 반영하고 있다. 광고 그 이상의 무엇을 보여줬다. 그게 광고가 가야 할 길이다.”

이번 심사과정에서도 한국 광고의 크리에이티브 성장이 두드러져 보였단다. 또 칸느 광고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본선 진출작이 가장 많은 것은 광고계 축이 아시아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며 “한국은 중국이나 인도, 일본, 태국 같은 국가들 간 정서적 중심이 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의 크리에이티브 허브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영국·프랑스·미국 광고를 비교하듯 한·중·일 광고를 비교해 달라고 하자 “일본은 영국, 중국은 미국 같고 한국은 프랑스와 통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 광고는 완고하고 유연성이 없는 느낌이고 중국은 아직 제품 프로모션으로 지갑을 건드리는 광고가 80%다. 한국은 감성적이지만 항상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내재하고 있다가 어떤 계기를 만나 분출하는 성향이다. 21세기는 감성의 시대고 인터넷의 시대란 점에서 정보산업이 발달한 한국의 잠재력이 크다. 앞으로는 매체가 더욱 감성에 어필하는 시대가 될 텐데 광고를 통해 극대화되리라 본다. 그게 한국에서 보이는 현상들이기도 하다.”

5 유료영화채널 Canal+광고. TV앞에 깔린 곰가죽 깔개가 재미있는 영화에 심취한 나머지 영화 속으로 들어가 감독이 되는 꿈을 꾼다는 내용. ⓒBETC
6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의 대선 포스터. 프랑스 국기를 연상시키는 뒷배경에 ‘고요한 힘’이라는 단순한 카피로 미테랑에게 프랑스를 대표할 만한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했다. ⓒRSCG
내 으뜸작은 열정만으로 만든 ‘19禁’ 광고
그는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 막판 역전극을 진두지휘한 ‘킹메이커’로도 유명하다. 출마선언 당시 미테랑은 늙고 힘없는 이미지로 지지율이 낮았다. 자크는 미테랑의 이미지를 굳이 젊게 덧칠하지 않았다. 대신 긍정적으로 전환시켰다. ‘늙었지만 경험이 많고 현실적이다. 조용한 만큼 믿음직스럽다’고 포장했다. 당시 전략을 묻자 “광고는 시와 비슷하다”며 장 콕토의 “시란 진실을 말하는 거짓”이라는 정의가 광고에도 적용된다고 했다. “광고는 꿈과 거짓을 말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에비앙 광고에서 아기가 롤러스케이트 타는 것은 거짓이지만 그만큼 제2의 젊음을 얻을 수 있다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대선 포스터 촬영 시 미테랑은 머리숱이 없는 쪽을 피해 앵글을 잡아달라고 했지만 자크는 프랑스 국민이 원하는 건 아버지, 할아버지라 판단했다. 당시 현직 대통령 지스카르 데스탱이 젊기 때문에 할 법한 실수들을 많이 했기에 오히려 나이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정공법을 택했다는 얘기다. “캠페인 동안은 화장도 못하게 했다. 그러다 마지막 TV토론 때 최고 메이크업을 받게 해 반전을 꾀했고, 미테랑이 생각보다 굉장히 멋있다는 쪽으로 유권자들 인식이 뒤집어졌다. 정치적 거짓이 아니라 심리적 반전을 노린 것이고, 그게 정치광고의 역할인 것 같다.”

7 루이뷔통 만년필 광고 앞에서 익살스런 포즈를 취한 자크 시겔라.
지금껏 1500여 개의 광고를 만들어온 그는 특이하게도 가장 자랑스러운 작품으로 MTV 성인방송 ‘Erotica’ 광고를 꼽았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종교적인 여성, 천식 걸린 여성, 여성 육상선수’ 등의 자막만 흐르고 그에 맞춰 “오 마이 갓”, 거친 호흡 소리, “Faster! faster!” 등 여성의 각종 신음소리만이 들리다 마지막에 ‘우리는 모든 종류의 여성을 안다’라는 자막으로 끝나는 코믹 ‘19금’ 광고다. 남성 버전도 있다.

“광고의 비결은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 광고에는 열정만 들었지 돈은 한 푼도 안 들었다. 하룻밤 새 내가 쓱쓱 카피를 쓰고 브라질 에이전시의 디렉터가 휘리릭 목소리 연기만으로 만들었다. 여자누드가 등장하는 광고는 얼마나 많나. 그런 것 없이 단순히 아이디어 하나로 광고가 가진 가장 순수한 의미를 드러냈다. 그래서 ‘돈은 아이디어를 못 만들지만 아이디어는 돈을 만들 수 있다’는 거다. 그것이 아이디어가 갖는 우월성이다. 앞으로도 세계를 움직이는 건 돈이 아니라 아이디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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