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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한 그릇, 보쌈 한 점에도 구구절절한 사연 차고 넘치네

중앙선데이 2013.09.07 00:23 339호 26면 지면보기
저자: 주영하 출판사: 휴머니스트 가격: 2만9000원
오늘은 뭘 먹지? 이건 현대인들의 영원한 고민이다. 그렇다고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나오느냐. 삼계탕·냉면·자장면·갈비…. 한국 음식이라는 게 다 이렇지 싶다.

『식탁 위의 한국사』

그런데 이 뻔한 메뉴들에 역사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들이 대체 어디서 시작됐고, 어떻게 우리 식탁에 올랐는지, 또 어떤 맛으로 변해 왔는지 한번 파고들어 보자는 말이다. 한마디로 명명해 ‘음식문화사’다.

책은 가장 흔한 한식 메뉴 32가지를 골라 그것의 본래 모습과 진화 과정을 훑어간다. 즉 특정 음식이 유행하는 데는 20세기 한반도라는 시공간이 배경이 됐음을 보여주자는 것. 이는 정치적 맥락이기도, 사회·문화적 변화이기도 했다. 저자가 서문에 미리 “음식사를 논하지만 재료가 언제 처음 유입됐고, 조리법이 언제 처음 생겨났는지보다 음식점 메뉴가 돼 유행한 시기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못박은 이유다.

예를 들어보자. 복날마다 찾는 삼계탕, 이것은 근대화의 전형적인 산물이었다. 식민지 시절 조선총독부는 계란 생산을 늘리기 위해 농촌에 양계업을 권장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사료는 비싸고 계란이 제값을 못 받자 양계업자들은 너도나도 닭을 식용육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게다가 1965년 정부는 인삼 재배를 허가제에서 자율제로 바꿨다. 닭과 인삼이 이렇게 넘쳐나자 1960년대 후반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영계백숙을 판매하던 식당들이 삼계탕을 본격 외식 메뉴로 내걸게 된 것이다. “공장형 양계 시스템이 발전함에 따라 토종닭은 점차 희귀해졌고, 우리는 닭고기의 제맛을 맛볼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저자의 해석에는 사뭇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편육은 또 어떤가. 지금은 편육 하면 돼지고기를 먼저 떠올리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쇠고기 편육이 주종을 이뤘다. 하지만 정부는 쇠고기값 폭등을 막기 위해 1970년대 학자들을 동원해 돼지고기의 영양학적 가치를 설파했고, 다양한 돼지고기 요리를 캠페인으로 알렸다. 1980년대 보쌈집의 대유행은 이런 배경에서 출발했고, 쇠고기 편육이 되레 희귀해지는 역전현상을 낳았다. “밥상에 간여한 정부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예가 아닐 수 없다.

경제 성장이 음식문화를 바꾸기도 했다. 갈비 뜯는 게 최고급 외식이 된 문화는 불과 30년 전에 비롯됐단다. 1920년대 갈비 한 대는 국밥의 3분의1 값이었다. 두 손에 뼈를 붙잡고 먹는 모습이 추하다 하여 선술집에서 노동자들이나 먹었던 것. 그러다 서민층의 지갑이 두둑해지고 쇠고기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고급 음식으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1980년대 초 인공폭포 흐르는 유원지에서 갈비를 먹는 게 하나의 문화가 되면서 본격적인 외식산업에 편입된 것이다. 이외에도 궁중요리로 둔갑한 떡갈비의 진실이나 정부의 권장음식으로 팔렸던 자장면 스토리 등은 무릎을 치며 볼 만하다.

지금껏 음식은 거대한 역사의 담론 속에 작은 파편으로 취급됐다. 그래서 먹거리를 통해 한국사회를 조명해 보는 새로운 시선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신문·잡지·문헌 등 풍부한 사료를 훑어 학문적 가치를 더한 것도 물론이다. 책장을 덮고 밥상 앞에 앉았다면 이런 물음이 생겨날지 모르겠다. ‘왜 지금 나는 이 음식을 먹게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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