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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업체 죽고 제조업 불똥” vs “피해 부풀려 과도한 반발”

중앙선데이 2013.09.08 00:11 339호 11면 지면보기
화학물질 등록평가 등에 관한 법률을 둘러싼 논란이 치열하다. 사진은 올 3월 독성가스 유출사고가 발생한 경북 구미의 구미케미컬 사고현장. [중앙포토]
#1. 5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8층 무궁화홀. 에이미 잭슨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대표를 비롯한 주한 외국 상공회의소 회장단과 소속 기업인 20여 명이 속속 모여들었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과의 간담회를 위해서다. 간담회 주제는 ‘화학물질 안전관리’. 이날 주한 외국 기업인들은 2015년 시행 예정인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이 기업 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한국신에츠실리콘㈜의 다케다 가즈미(竹田一己) 대표는 “법이 예정대로 시행되면 앞으로 한국에서 사업하기가 무척 힘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치열해지는 화학물질 등록·평가법안 공방

#2. 경기도 수원에 공장을 두고 잉크 제품 등을 생산하고 있는 중소화학업체 알파켐의 조규오 사장은 요즘 화평법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한 해 매출 400억원에 영업이익 15억원 내외인 이 회사는 제품 생산·개발을 위해 계면활성제를 비롯한 많은 화학물질을 취급하고 있다. 조 사장은 “화평법은 새로 만들거나 수입하는 화학물질은 아무리 소량이라도 모두 신고하고 시험 결과를 등록해야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돈만 해도 건당 수백만~수천만원”이라며 “연구개발은 물론 물건도 제때 팔기 어려워져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다 죽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3. 화평법 제정을 주도했던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은 3일 “화평법에 산업계의 입장을 반영하다 보니 당초 입법 예고안보다도 오히려 후퇴했다”며 “산업계는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내용을 완화시키기 위한 로비를 중단해야 한다”는 논평을 냈다. 심 의원실 박항주 환경정책담당 보좌관은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시행령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며 “화평법이 시행되면 기업 입장에선 비용이 증가하겠지만 국민 안전과 환경보전을 고려하면 사회 전체의 편익이 크게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화평법을 둘러싼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화평법은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해 2015년 시행될 예정이다. 입법 예고와 법 제정 당시 산업계의 반발이 1라운드라면, 구체적인 정책을 담을 시행령 제정을 놓고 공방의 2라운드가 벌어지고 있다. 시행령 제정을 위한 민관 협의체는 3일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산업계가 관련 단체·주한 외국기업 등을 앞세워 반발의 목소리를 높이자 그동안 목소리를 아껴온 정부도 공세에 나서고 있다. 화평법을 대표발의했던 심상정 의원은 산업계에 맞서 관련 규제 완화에 반대하고 있다. 업계의 반발이 지나치고 피해액은 과장돼 있다는 것이다. 산업계가 우려하는 점들도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해소될 것이므로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업계는 ‘시행령은 법의 큰 테두리 안에서 만드는 것이기에 모법이 수정되지 않는 한 한계가 있다’며 법 조항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기존의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을 강화한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이 지난 5월 제정되면서 산업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화관법에는 유해화학물질 유출사고를 일으킨 기업에 대해 매출액의 최대 5%까지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산업계 일각에서는 “화평법과 화관법, 2개의 법이 관련 업계를 죽일 것”이라는 과격한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화평법이 올해 불쑥 나온 것은 아니다. 시안이 마련된 것은 3년 전인 2010년 말이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화학물질 관리를 강화하기 시작하자 우리도 이에 맞춰 준비에 들어갔다. 정부는 업계와의 조율을 거쳐 지난해 9월 법안을 제출했다. 그 와중에 가습기 살균제 사고와 삼성전자 불산 유출사고, 대림산업 여수공장 폭발 사고가 잇따르면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심상정 의원이 대표발의한 별도의 화평법이 나왔다. 국회는 정부안과 심 의원 법안을 함께 심의해 단일 법안으로 된 화평법을 4월 통과시켰고, 별도의 화관법도 마련됐다. 기존의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 규제를 강화하면서 화평법과 화관법 2가지 법안으로 나뉜 것으로 보면 된다.

“신규물질 등록 한건 당 최대 1억원”
산업계가 화평법·화관법에 불만을 표시하는 건 크게 5가지다. 화평법에 ▶소량 화학물질에 대한 보고·등록 면제 조항이 없고 ▶조사·연구를 위해 만들거나 수입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면제 여부가 불확실하며 ▶화학물질의 성분을 등록하는 과정에서 성분비율 등 영업비밀이 침해당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화관법의 ▶ 5% 과징금 규정 ▶장외영향평가서 제출도 부담이 크다는 주장이다. 장외영향평가서란 유해화학물질 유출사고 발생 시 사업장 외부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 정부에 제출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소량 등록 면제’ 조항이 가장 뜨거운 감자다. 기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서는 연간 100㎏ 이하로 제조·수입하는 소량의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등록을 면제해 줬지만 화평법은 ‘모든 신규 화학물질을 등록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석유화학협회 김기영 환경안전 본부장은 “소량 등록 면제 조항의 삭제는 기업의 연구개발을 위축시키고 상당한 비용을 발생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화학물질의 보고·등록을 위해서는 동물실험 등을 거쳐야 하는데, 기술 부족으로 외국에서 돈을 주고 실험 결과를 사와야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지적이다. 자체 실험을 할 때도 건당 수천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고 기간도 6개월~1년 이상 걸려 제대로 된 연구개발과 판매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신규 물질뿐 아니라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화학물질 중에서도 일부 유해물질은 등록시킬 방침이어서 이 부담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4만4000여 종의 화학물질 가운데 유해성이 높은 2500여 개 물질을 선정해 앞으로 이를 1t 이상 제조·수입하는 기업은 별도의 등록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업체가 워낙 많은 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납품관계로 얽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절차를 거치게 되면 납품 지연이나 비용 부담으로 제조업 전체로 악영향이 확산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대형 화학업체 관계자는 “현재 신규물질 등록을 위한 비용이 건당 최대 1억원이 든다”며 “화평법 시행으로 소량의 물질까지 모두 등록하게 되면 최고 10배 이상으로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화학물질을 등록할 때 구성 성분을 자세하게 밝히도록 해놓은 것도 업계의 부담이다.

연구개발 과정에서 나오는 신규 물질 등록 대상도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알파켐의 조규오 사장은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나오는 신규 물질은 수백 개가 넘는다”며 “그런데도 시험용 제품에 대해서는 등록 여부에 대한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5% 과징금 조항’은 한 번만 적용돼도 회사를 휘청거리게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화학업체의 영업이익률이 2~3% 수준에 불과한데 매출액의 5%를 과징금으로는 내라는 것은 교각살우 격이라는 것이다. 새롭게 도입되는 장외영향평가서도 그 비용이 2000만~1억원까지 들어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 푼이 아쉬운 중소기업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No Data, No Market … 기업에 도움 될 것”
정부는 업계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조은희 환경부 화학물질과장은 소량물질 등록 조항에 대해 “국민의 안전을 위해 신규 물질은 모두 등록하는 게 필요하다”며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등록 절차를 최대한 간소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기업비밀 유출 우려도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신규 물질 등록 시 기업이 비밀유지를 요청하면 해당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정보 공유 대상에도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화학물질 거래에 관한 세계적인 추세가 ‘노 데이터, 노 마켓’(No Data, No Market·‘분석 자료 없으면 시장 거래 없다’)”이라며 “관련 분석자료를 등록하게 되면 우리 기업의 수출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의원실 박항주 보좌관은 “업계는 화평법 도입으로 비용 부담이 2조~7조6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17배나 큰 유럽연합(EU)만 해도 화평법과 유사한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 도입에 따른 추가 비용이 4조~7조6000억원 수준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업계의 주장이 과장됐다는 뜻이다.

5% 과징금 규정에 대해서도 업계의 우려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서영태 환경부 화학물질안전 TF팀장은 “5% 규정은 6개월 영업정지 대신 마련한 벌칙 조항”이라며 “최대 5%까지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지 사고가 난다고 해서 모두 5%를 부과하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장외영향평가서도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종류나 양에 따라 차별화하고 간소화할 방침이다.

한국위험물학회 부회장인 문일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는 “산업계와 정부 양쪽의 주장 모두가 일리가 있다”며 “지금보다 화학물질 관리는 강화돼야 하지만 아직 규정이 분명하게 정리가 안 된 부분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업계와 관련 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시행령을 마련, 2015년 예정대로 이를 시행하되 기업 규모나 매출 또는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양과 유해 정도에 따라 적용 시기를 차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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