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섹스리스와 인절미

중앙선데이 2013.09.08 00:38 339호 18면 지면보기
“‘시어머니와 인절미’ 얘기 아십니까?”

 결혼 7년째 지독한 섹스리스에 시달리는 부부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지자 남편 C씨는 의아해한다.

 “박사님이 뭘 착각하셨나 본데 저희는 고부갈등이 없는데요?”

 “아내가 여자로서 매력이 전혀 없다”며 자신의 섹스리스를 합리화했던 남편 C씨. 아내의 끈질긴 설득 때문에 진료실에 왔지만 “아내와 성적으로 맞지 않아 이혼할 거니 말리지 말라”고 반감만 표시했다.

 이런 갈등 상황의 부부에게 ‘시어머니와 인절미’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부관계를 포함한 인간관계에서 좋은 혜안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온갖 궂은일만 시키고, 남들에게 며느리 험담을 끝없이 하는 시어머니를 미워하던 며느리에 관한 얘기다.

 며느리는 어느 날 점쟁이를 찾아 “시어머니가 빨리 죽게 저주의 부적을 써 달라”고 했다. 이에 점쟁이는 “부적보다 더 좋은 비방이 있다”며 “시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며느리는 인절미라고 답했다. 점쟁이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에게 매일 인절미를 먹이면 몇 달 안에 죽을 것이니 그리 하라”고 조언했다.

일러스트 강일구
 며느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어머니에게 인절미를 해드렸는데, 자초지종을 모르는 시어머니의 태도는 점차 변해 갔다. 더 이상 구박하지 않고 남들에게 며느리 칭찬도 하는 좋은 시어머니로 변신한 모습에 며느리는 미움이 사라지고 죄책감도 들게 됐다. 급기야 점쟁이를 다시 찾아 정든 시어머니가 인절미 때문에 돌아가시면 어쩌나 슬퍼했다. 그러자 점쟁이는 “미운 시어머니는 이제 죽고 좋은 시어머니만 남았으니 앞으로 사이 좋게 잘 살라”고 했다. 진부한 얘기 같지만 점쟁이의 해결책은 가족치료나 부부치료에서 갈등을 완화시키는 관계기술법으로 많이 권장하는 긍정적인 의사소통법과 행동요령에 해당한다.

 “결국 박사님 말씀은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란 거네요. 이미 아내에게 애정이 전혀 없고 아내 성격도 너무 싫습니다. 쓸데없이 치료로 시간낭비하기 싫어요.”

 우리나라는 부부간 섹스리스 문제가 세계 최악 수준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 부부들은 불만이 전혀 없어서 섹스리스 빈도가 낮을까. 여러 연구 결과 인간의 행복지수를 가장 많이 좌우하는 요소는 ‘성행위를 포함한 행복하고 안정적인 부부의 인간관계’로 밝혀져 왔다. 섹스리스 문제를 방치하고 다른 어딘가에 내게 딱 맞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며 신기루를 좇다 보면 불행만 커진다.

 섹스리스란 부부문제에서 인절미는 바로 스킨십과 성생활 그 자체다. 열정과 사랑이 식었는데 어찌 인위적으로 되겠느냐고 반문도 한다. 그런데 치료에 따라 부자연스럽게 시작된 인위적 스킨십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자연스러움을 되찾는다. 그때까진 틀이 필요한 것이다.

 치료 전 희망이 없다던 많은 섹스리스 부부들이 치료 후 한결같이 하는 말은, ‘내 배우자와 이렇게 가까운 관계로 바뀔 줄 몰랐다’다. 인내심을 갖고 미운 배우자에게 인절미를 주다 보면 ‘미운 모습’은 죽고 ‘좋은 모습’만 남을 수 있다. 사랑이 식고 미워져서 섹스리스가 되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섹스리스로 살다가 배우자가 더 싫어진 건 아닌지 뒤집어 생각해 볼 일이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