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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1등은 없어 … 지난 한 해 내 성적은 80점”

중앙선데이 2013.09.08 00:45 339호 19면 지면보기
루키 이동환이 PGA 투어의 한 대회에서 퍼팅 라인을 살피고 있다. 그는 AT&T내셔널에서 시즌 최고 성적인 공동 3위를 차지하며 내년 투어카드를 획득했다. [사진 CJ오쇼핑]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왔죠. 저도 이 대회 챔피언 출신이거든요.”

아시아 선수로 PGA투어 Q스쿨 첫 수석 합격, 이동환의 루키 시즌 1년

 지난 2일 경기도 성남의 남서울골프장 연습 그린. 허정구배 제60회 한국아마추어 골프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주니어 선수들 사이에서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이동환(25·CJ오쇼핑)이 웃고 있었다. 그는 웃으면 눈이 없어진다고 생각해 잘 웃지 않는다. 그래도 이날은 싱글벙글 자주 웃었다. 그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루키 시즌을 마치고 지난 1일 일시 귀국했지만 한걸음에 대회장을 찾았다.

 국내 주니어 골프선수들 사이에서 이동환은 최경주(43·SK텔레콤)나 양용은(41·KB금융그룹) 못지않은 우상이다. 이동환은 지난해 PGA 투어 마지막 퀄리파잉 스쿨(The last Q-School)에서 수석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 남자골프가 PGA 투어 96년 역사와 Q스쿨이 도입된 1965년 이후 47년 만에 세운 또 하나의 금자탑이었다. 92년 일본의 구라모토 마사히로(57)가 공동 1위를 기록한 적이 있지만 한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가 Q스쿨을 1위로 통과한 것은 이동환이 처음이었다.

 국가대표를 거친 이동환은 2004 일본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최연소(17세3개월) 우승 기록을 세우며 일본에서 더 주목받은 선수였다. 2006년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 데뷔해 신인왕을 받았고 통산 2승을 올렸다. 이에 앞서 이동환은 정확히 10년 전인 2003년 국내 최고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허정구배 제50회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 마지막 날 정말 기막힌 역전승을 일궈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그는 5개 홀을 남겨 놓고 5타를 뒤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역전승을 위해서는 6타를 줄여야 했고 아무도 그런 대반전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남은 5개 홀에서 ‘이글-버디-버디-버디-버디’가 나왔다. 파5의 14번 홀에서 이글을 기록했고 이어진 파4의 15번 홀 버디, 파5의 16번 홀에서 또 버디, 파3의 17번 홀에서 또다시 버디를 하며 사이클링 버디가 됐다. 사이클링 버디는 파3-파4-파5 홀에서 연속해 버디를 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마지막 18번 홀. 한 타만 더 줄이면 역전 우승. 3m 거리에서 친 버디 퍼트가 거짓말처럼 홀로 빨려 들어갔다. 이동환은 그렇게 후배들의 영웅이 됐다. 그는 ‘후배들에게 어떤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가’라고 묻자 “우연한 1등(우승)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노력한 만큼 돌아온다고 했다.

 Q스쿨 수석 합격자로 PGA 투어 루키 시즌을 마감한 그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지난 1년을 점수로 환산한다면 100점 기준에 몇 점을 줄 수 있는가.
 “80점이다. 두 가지 목표를 다 이뤘다. 첫째는 시드를 유지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1차전까지 진출하는 것이었다. 그 두 가지를 다 해냈다.”(※그는 상금랭킹 95위를 기록해 내년도 투어 카드가 주어지는 125위 이내에 들어 시드를 유지했다. 상금은 88만2793달러로 약 9억6000만원을 벌었다. 플레이오프 2차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자신의 목표처럼 1차전까지 뛰었다.)

 -수석 합격자라는 꼬리표가 어떤 도움이 됐는가, 아니면 부담이 됐는가.
 “처음에는 ‘독’이었다. 1위로 통과했다는 것은 큰 자신감이었다. 문제는 자신감이 너무 넘쳐 ‘자만’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동환은 올 시즌 22개 대회에 출전해 3번 톱10에 진입했지만 8차례 컷 탈락했고 2차례는 기권했다. 특히 상반기 6월까지 15개 대회에서 5차례나 컷 탈락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어떤 점이 가장 아쉬웠다고 생각하는가.
 “환경 적응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대회장의 분위기도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일본에서 투어 생활을 할 때는 선수나 갤러리도 모두 다 동양인이어서 아무런 의식 없이 경기를 했다. 그런데 PGA 투어에서는 내가 ‘이방인’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언어의 장벽도 문제였다. 서구적인 침대 문화도 일본과는 달랐다.”(※그는 잠자리가 생각보다 불편했다고 말했다. 일본 호텔 등의 침대는 낮은 편인데 미국 호텔 방의 침대는 생각보다 높아 누우면 몸이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이어서 잠을 잘 자지 못했다고 했다.)

 이 때문이었을까. 그는 지난 2월과 5월 두 차례나 향수병에 걸렸다. “일본에서 투어 생활을 할 때는 2시간이면 한국으로 날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바로 오고 싶어도 ‘절대거리’가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누구나 스스로 ‘외롭다’는 생각이 들면 견디기 힘겨울 때가 있다. 두 번의 향수병 중에 한 번은 정말 참지 못하고 아무도 모르게 한국에 왔다 갔다. 이건 비밀이다(웃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지난 7월 AT&T내셔널에서 시즌 최고 성적인 공동 3위를 했다. 그런데 3라운드 때 ‘손가락 욕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때문에 미국 언론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는데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 자리에서 밝힐 수 있는가.(※당시 이동환은 3라운드 12번 홀에서 자신이 친 두 번째 샷이 그린을 벗어나자 클럽 헤드로 잔디를 몇 차례 치더니 전방을 향해 왼손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미국 언론들은 손가락 욕설이 두 번째 샷 지점에 있었던 2명의 남자 갤러리를 향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CBS는 “아마 갤러리 중 누군가가 이동환이 백스윙할 때 시끄럽게 했거나 그의 샷 결과를 비웃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사실 그 때문에 힘들었다. 오로지 내 플레이가 만족스럽지 못해 한 행동이었다. 선두로 치고 나설 수 있는 상황에서 결정적인 실수가 나왔다. 상반기의 부진을 털고 시드(투어카드)를 유지할 수 있는 중대한 대회였다. 그래서 나 스스로 화를 참지 못한 것이다. 공이 그린 밖으로 튕겨져 나가자 공을 향해 한 행동이었는데 그게 그만 문제가 됐다.”

 이동환은 역설적으로 3라운드 때의 이 사건 때문에 시드를 유지할 수 있는 ‘황금머니(공동 3위 상금 37만7000달러·약 4억1000만원)’를 챙겼다. 그는 대회가 끝나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손가락 욕설’에 대한 상황을 해명하고 싶어 했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는 마지막 날 더 잘 쳐서 인터뷰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더 집중해 플레이를 했다. 어쨌든 많은 공부가 됐다”고 했다.

 이제 그는 다시 신발끈을 조여 매고 있다. 앞으로 2주 뒤면 PGA 투어는 플레이오프 3, 4차전까지 모두 마치고 2013시즌을 마감한다. 하지만 10월부터 2014 시즌의 6개 대회가 치러진다. “내년 내 목표는 투어 1승이다. 벌써 그 시즌이 시작되고 있다. 내년에는 플레이오프 4차전까지 가는 것이다. 한번 물면 놓치지 않는 이동환의 골프 기질을 보여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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