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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의 글로벌 포커스] 美 월가의 화려한 부활 vs 한국 금융의 추락

중앙선데이 2013.09.08 00:59 339호 20면 지면보기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지 벌써 5주년이다. 2008년 9월 15일 터진 리먼 사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됐다. 리먼 사태 이후 미 은행들은 공적자금을 수혈 받아 겨우 목숨을 건졌다. 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월가 점령’ 시위를 야기하기도 했다.

역대 최고 순익 내는 미 은행들
5년이 지난 지금 월가는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JP모건과 웰스파고 등 주요 은행들은 위기 전 수준을 넘어 역대 최고 순익을 내고 있다. 미 은행과 금융그룹들은 최근 1년 새 주가가 70~90%씩 뛰었다.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넘나드는 가운데 기업 인수합병(M&A) 봇물까지 터졌다. 미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에 영국 보다폰 지분(45%)이 무려 1300억 달러(약 144조원)에 팔리는 대형 M&A가 성사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핀란드 노키아의 휴대전화 사업부문을 72억 달러에 인수했다. 월가 은행들은 이들 거래를 중개하고 뒷돈을 대주면서 돈벼락을 맞고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들도 각종 펀드에 돈이 다시 밀려들어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월가의 화려한 부활은 구조조정과 혁신을 통한 경쟁력 복구, 그리고 자기 반성에 기초한 고객 신뢰 회복 덕분이다. 물론 경제 회복 흐름도 밑바탕에 깔렸다. 미국의 금융산업은 경기 회복의 덕을 보면서 이를 더욱 촉진하는 선순환을 해내고 있다.

그런데 한국 금융의 현실은 정반대다. 은행들의 순익은 금융위기 이후 슬금슬금 줄더니 올 들어 곤두박질하고 있다. KB금융의 경우 상반기 순익은 575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조1566억원)에 비해 반 토막 났다. 증권회사들의 사정은 더욱 딱하다. 올 2분기 중 국내 62개 증권사의 순익은 다 합해 봐야 1100억원이다. 증권사의 3분의 1인 21곳이 적자를 냈다.

일러스트 강일구
한국 금융의 낙후성은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지탄받기에 이르렀다. 지난주 나온 세계경제포럼(WEF)의 2013년 국가경쟁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는 148개 조사 대상국 중 81위로 나타났다. 지난해(71위)보다 10계단이나 미끄러져 후진국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중소·벤처자금 지원, 대출 용이성, 은행 건전성 등 지표는 110위권에 깔렸다. 이런 성적은 한국의 국가경쟁력 총점을 19위에서 25위를 떨어뜨린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 금융 경쟁력은 후진국 수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금융은 많이 달라졌다는 소리를 들었고, 정부도 아시아 금융허브 정책까지 추진하지 않았던가?

다 현실에 안주해 혁신을 게을리한 결과다. 합병으로 몸집을 잔뜩 키운 금융그룹들은 독과점 체제의 라이선스 장사에 만족했다. 가만히 있어도 떨어지는 예대마진과 수수료 장사에 치중했다. 좀 된다 싶은 곳에는 쏠림 대출 경쟁을 벌여 주기적으로 막대한 부실을 떠안았다.
 
관치보다 나쁜 정치, 거꾸로 가는 정책
경영진의 자질도 크게 떨어졌다. 금융이 관치를 넘어 정치에 휘둘리면서 생긴 일이다. 청와대·정치권에 줄을 대지 않으면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이 되기 힘들다는 건 이제 정설이 됐다. CEO의 정당성 결여는 노조에 더없는 호재다. 금융그룹과 은행에 새 CEO가 들어올라치면 노조는 드러눕고 본다. 그러면 “인력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고 급여·복리 증진에도 힘을 쏟겠다”는 화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해서 은행원 평균 연봉 1억원 시대가 열렸다.

증권·자산운용 업계는 또 어떤가? 주식 단타 매매로 큰돈을 벌었던 때의 습성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상품이 수익 좀 난다 싶으면 너도나도 베껴 팔기 바쁘다. 고객 입장에서 꼼꼼히 리스크를 살피는 일은 드물다. 뜨내기 장사 식으로 잔뜩 열을 올리다가도 ‘아니면 말고’ 식이다. 그러다 보니 투자자들만 친디아 펀드다, 인사이트 펀드다, 브라질 채권이다 하며 돌아가며 멍이 들었다. 이제 와서 “투자자들 다 어디로 갔느냐”고 탄식해 봐야 소용없을 지경이다. 자초한 ‘신뢰의 추락’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금융정책까지 거꾸로 가고 있다. 금융을 반듯한 서비스 산업으로 인정하고 육성하려는 의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서민금융이나 창조경제를 지원하는 인프라 정도로 여기는 장면이 자주 목격된다. 1960~80년대 경제개발 시대의 금융을 보는 듯하다.

금융계의 한 전직 CEO의 말이 귀에 맴돈다. “다 IMF 이전으로 돌아갔다. 단 한 가지 잔뜩 치솟은 임직원 연봉만 빼놓고 말이다. 결국 다 금융 소비자들이 떠안아야 할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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