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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한여름 밤의 게송

중앙선데이 2013.09.08 01:48 339호 27면 지면보기
한동안 계속된 무더위에 나무들이 시들시들했다.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더위는 이기는 것이 아니고 피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세상일도 맞서기보다 피하는 일이 더 많다. 엊그제 법답게 사시던 선배님들 몇 분이 무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병상에서 자연으로 돌아가셨다. 열반하신 것이다. 문득 난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떠나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스스로 물음을 던졌다. 첫째 생각이 남 미워하지 말자, 둘째는 적어도 나 스스로 무덤 파는 일은 하지 말자였다.

차를 몰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얼굴에 주름이 많으신 어르신이 휴대전화로 대화를 했다. 연세가 들면 귀도 어둡고 자연 목소리도 커지게 되니 어르신이 지나가는 사이 안 들어도 될 말을 듣게 되었다. “아니 내가 내 무덤 파는 일을 왜 하겠어?” 이런 내용이었다.

자연을 벗하면 나뭇잎 소리에도 깨달음이 있고, 세상을 오고 가면 바쁜 휴게소에서의 전화 목소리도 내 마음속엔 실루엣이 된다. 그것은 화선지에 먹물의 번짐처럼 그렇게 내게 그림자를 만든다. 그래, 나도 스스로 무덤 파는 일은 하지 않고 살아야지. 저 말이 부처님 말씀이구나 생각했다.

남을 미워하게 되는 건 가끔 그 사람을 생각할 때다. 남의 마음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게 인간이 가진 한계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되지 않으면 은근히 화가 나거나 아니면 미워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것은 사실 어리석음이다. 소태산 대종사님도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남의 마음을 내가 함부로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린 시도 때도 없이 자기 주장을 교묘하게 합리화하곤 한다. 그것도 안 되면 미워하거나 안 좋게 뒷담화를 한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게 타인의 잘못됨을 미워하는 일이다. 그럴 경우 마음에 절대적으로 피로 현상을 느낀다. 왜냐면 그 사람을 생각해야 하고,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합리적으로 미워할 명분을 내 마음에 심어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덤을 파는 일도 그렇다. 내가 뭘 좀 잘한다, 다시 말해 글 좀 쓴다 그림 좀 그린다 하는데, 조금 이상하게 쓰면 타인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무미건조한 그림을 그리면 보는 사람에게 냉소적인 마음을 일으키기 쉽다.

사람들은 마치 머리싸움 하듯 말과 글을 쓴다. 그러나 아무리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 해도 마음이 다가서지 않으면 무덤을 파는 일이나 다를 바가 없다. 살면서 우리가 시비이해(是非利害) 속에 ‘지혜롭게 판단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부질없이 행동했던 일이 부지기수다. 때로 수행자에게 명예나 직위는 100원짜리 동전에 불과하다. 무욕이란 그만큼 어렵지만 남이 권하지 않는 욕심만큼 자신의 무덤을 파는 일도 없다.

며칠 전 무더위 속에 선배는 이런 게송(偈頌)을 남기고 열반했다.

어제 날에 떫은 감, 오늘은 단감이네
번뇌 망상 여의고 보리 따로 없으니
생사 열반이 본래 두 몸이던가
한마음 나지 않는데 어디서 생사를 찾을까.



정은광 원광대학교 미술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마음을 소유하지 마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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