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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칼럼] 코끼리 사단과 김기춘 리더십

중앙선데이 2013.09.08 02:22 339호 30면 지면보기
올해 프로야구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김응용 한화 감독의 성공적 복귀 여부였다. 4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의 감독들이 대세인 프로야구계에서 72세의 김 감독이 어떤 바람을 일으킬지 ‘기대 반, 호기심 반’이었다. 프로야구 팬으로서 김 감독이 10여 년 전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보여 주며 다시 한 번 그라운드를 호령하길 바랐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그에게서 팀을 10차례나 우승시켰던 거장의 위용을 찾긴 어려웠다. 묵직한 모습으로 벤치를 지키는 ‘코끼리 감독’이 아니라 조급한 표정의 노(老)감독에게 많은 팬은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다.

 김 감독의 애제자인 선동열(50) 기아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간판급 투수 출신인 그는 삼성 감독으로 있을 때 두 번이나 우승을 경험했다. 팬들의 기대가 컸기에 실망감도 클 것이다. 자기 팀 선수들의 실망스러운 플레이에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경기에 승리한 뒤 “상대팀 선수 세 명의 실수 덕분에 이겼지…”라는 조롱 조의 소감 때문에 ‘멍게 감독’이란 비난을 자초했다. “올해 가을야구엔 김응용도 없고, 선동열도 없고…”란 팬들의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프로야구계를 쥐락펴락하던 이른바 ‘코끼리 사단’의 쇠퇴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아마도 고질적인 패거리 문화와 이에 따른 일방 통행식 리더십이 이들의 추락에 일조하지 않았을까. 김응용 감독은 한화 감독으로 가면서 김성한·김종모·이대진·이종범을 데려갔고, 선동열 감독은 김정수·김태룡·신동수·이순철 등으로 코치진을 구성했다. 이들은 모두 김 감독이 기아 전신인 해태 감독으로 있을 때 선수로 뛰었던 인연이 있다. 더그아웃에 나란히 앉아 있는 이들의 모습은 10여 년 전 해태 타이거즈의 재판(再版)을 보는 것 같아 유쾌하지 않았다. “형님! 동생!” 하며 한솥밥을 먹었던 이들의 관계에서 견제와 균형을 바랄 수 있을까.

 이런 와중에 만년 하위팀이었던 넥센의 반란을 주도하고 있는 염경엽 감독의 리더십은 통쾌한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염 감독은 10년간 선수생활을 할 때 0.195의 타율을 기록한 B급 타자였다. 그의 화려한 부활을 보며 ‘공부하는 리더십’ ‘소통과 섬김의 리더십’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염 감독은 자신의 생각과 전략이 빽빽이 담긴 7권의 ‘공부 노트’를 바탕으로 선수들을 지도하며, 경기가 끝난 뒤에도 복기를 한다고 한다. “나를 따르라”는 일방적 외침보다는 코치와 선수들에게 자신을 맞추는 소통의 리더십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작금의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박근혜정부의 핵심 실세들은 어떨까.

 74세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권력 무대에 컴백하면서 코끼리 사단 식의 리더십이 걱정됐던 게 사실이다. 김 실장을 비롯해 69세의 정홍원 국무총리, 62세의 홍경식 청와대 민정수석은 모두 검찰 출신이다. 더욱이 공안 정국을 주도한 경험도 있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이들의 리더십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관료 출신인 만모한 싱 총리는 72세였던 2004년부터 ‘코끼리의 나라’ 인도 대륙을 맡아 10년째 부국강병을 실현하고 있다. 인도 경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구원투수로 등장했지만 소통을 바탕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인품과 실력을 인정받았다.

 청와대와 권력 핵심부에 대한 국민의 걱정은 과거 검찰의 일방통행식 리더십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비서에겐 입이 없다”며 대중 앞에 나서지 않는 김 실장의 소신을 어떻게 봐야 할까. 산업화 시대의 아날로그 방식으로 정보화 시대의 디지털 사회를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야구협회(KBO) 총재로도 활동하는 등 열성 야구 팬으로 알려진 김 실장은 코끼리 사단의 추락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지금 박근혜정부에 필요한 건 염경엽 감독의 리더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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