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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도 소통시대

중앙선데이 2013.09.08 02:31 339호 31면 지면보기
“핫이슈! 통상임금, 공개변론 생중계! 모두 공개합니다!”

 “생중계 ON AIR! 재판 과정도 보고 댓글도 달고. 그 생생한 현장을 지금 바로 확인하세요!”

 사뭇 이벤트 광고 같은 이 문구들의 출처는 바로 대한민국 대법원의 공식 트위터와 페이스북이다.

 통상임금 기준 논란과 별개로 ‘통상임금 공개변론’이 화제다. 지난 5일 대법원은 인터넷 홈페이지와 네이버, KTV를 통해 모든 재판 과정을 생중계하고 이 자리에 대법원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을 초청했다. 필자도 직접 방청 대신 사무실에서 모니터로 시청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시작에 앞서 “이 소송은 사회경제적 영향이 크고 의견 대립이 클 뿐 아니라 대법원 각 부에서도 해석이 달라 공개변론과 생중계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변호사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이번 공개변론을 대한 필자의 관전포인트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변화다. 법정 소송과 법조계를 둘러싼 제반 환경, 그리고 소송에 대한 여론의 관심과 접근성이 불과 2~3년 만에 크게 달라졌음을 절감했다. 생중계 직후 네이버 댓글은 한 시간 만에 수백 개나 됐다. 둘째는 청중의 눈높이다.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들어가느냐 여부에 대한 팽팽한 법리 대결을 지켜보는 청중은 재판정에 온 법조인과 방청객뿐만이 아니었다. 생중계 카메라 너머에는 수많은 일반 국민과 언론매체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원·피고 측의 변론과 발표 자료들을 살펴보면 법조인들을 상대하듯 세세하고 장황하게 법리를 설명하는 형식이었다. 일반 국민이 한 번에 쉽게 이해하기엔 다소 무리였다. 청중의 눈높이에 맞춘 간결하고 인상적인 핵심 메시지, 인포그래픽스 중심의 변론이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그렇다고 실망스러운 부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법관과 원·피고 대리인, 참고인 간의 질의응답은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훌륭한 토론의 장이었다. 이것이 바로 공개변론의 묘미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여론과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다. 대법원 재판의 생중계는 지난 3월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통상임금 기준처럼 사회적 관심이 높고 경제적 영향력이 큰 사안에 대해 여론의 눈과 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여론은 ‘법정 밖의 법정’이라 불리며 소송의 향방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추세다. 그래서 법조인뿐만 아니라 소송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도 바빠진다. 제임스 해거티는 소송 커뮤니케이션의 교과서로 불리는 『여론의 법정에서』에서 “(소송 커뮤니케이션은) 소송 결과를 유리하게 이끄는 역할을 넘어 재판 과정에서 기업의 명성과 신뢰, 기업에 대한 여론을 관리하여 기업의 장기적인 미래를 결정짓는다”고 쓰고 있다.

 지금까지 법조인들은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재판과정에서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인 재판을 해야 하는 법관의 판단에 방해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여론 추이를 신경 쓸 경우 오히려 소송의 결과에 악역향을 미친다고 생각해 왔다. 고작해야 여론 조작 또는 언론 홍보쯤으로 간주돼 왔다.

 그러나 지금은 대법원이 공개변론을 생중계하는 시대다. 국민참여재판, 집단소송제 도입과 같은 사법환경의 변화 때문에 소송 당사자와 스테이크홀더(stakeholder·이해당사자)도 확대되고 있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소송의 원인·경과·결과를 시의적절하게 공개하고, 복잡한 법리 해석을 알기 쉽게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양 대법원장은 이번 공개변론에 앞서 “격조 높은 법리의 경연장이 되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법조인과 의뢰인들이 소통·설득을 통해 주요 현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과정도 중요할 것이다.



현지원 사법시험 42회(2000년). 연세대에서 법학 박사를 딴 뒤 로펌 변호사를 거쳐 마콜커뮤니케이션컨설팅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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