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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칵테일 푸치' 이석기

중앙일보 2013.09.07 00:29 종합 29면 지면보기
박용필
LA중앙일보 논설고문
미국 근대사의 한 귀퉁이엔 ‘칵테일 푸치(Cocktail Putsch)’ 사건이 간략하게 기술돼 있다. ‘푸치’는 정부 전복을 뜻한다. 규모가 크고 또 폭력적이어서 소수의 병력이 동원되는 쿠데타와는 구별된다. ‘칵테일 푸치’는 술집에서 한잔 마시며 내란음모를 꾸몄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사건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집권 초기인 193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모의 주역은 놀랍게도 스메들리 버틀러. 미국 최고의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두 번이나 받은 인물이다.



그가 치른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을 포함해 모두 121회에 이른다. 당시 해병대 최고계급인 소장에 올랐으나 정치적인 언행이 빌미가 돼 34년이나 입었던 군복을 벗었다.



 그는 뼛속까지 평화주의자다. 예편 후 전국 각지를 돌며 전쟁의 추악함을 고발해 보수주의자들의 미움을 샀다. 마피아의 대부 알 카포네는 시카고의 3개 지역에서 사기를 쳤지만 자신은 중남미 등 3개 대륙에서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사기행각을 벌였다고 양심고백을 해 진보성향의 지식인들 사이에 명망이 높았다.



 그런 버틀러에게 월스트리트의 투자전문가 제럴드 맥과이어가 접근했다. 재향군인회인 아메리칸 리전(American Legion)에서 간부로도 활동하고 있던 맥과이어는 이 전쟁영웅에게 축사를 부탁한다며 연설문 초안을 건넸다.



금본위제도를 폐기한 루스벨트의 정책을 성토하는 내용이었다. “달러가 금과 연계되지 않으면 군인들이 받는 봉급은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다”고 꼬드겼다. 평생을 군인으로 보낸 버틀러는 맥과이어의 세 치 혀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몇 개월 후 맥과이어는 본색을 드러낸다. 백악관을 무력으로 탈취하자는 것이다. 병력 규모는 무려 50만 명. 사상 최악의 대공황 시절이어서 실업 상태인 제대군인들을 쉽게 끌어모을 수 있다며 반란군 사령관직을 제의했다. 그러면서 록펠러, JP 모건 등 상당수 재벌들이 군자금을 대준다는 말도 덧붙였다.



 백악관 점령 후 시나리오도 내놨다. 루스벨트를 허수아비로 만든 다음 실권을 버틀러에게 넘기겠다고 유혹했다. 한마디로 워싱턴에 파시스트 정권을 세우겠다는 발상이다.



 그제서야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덫에 걸린 상황이었다. 몇 날이나 밤잠을 못 이루고 고민했던 그는 의회에 쿠데타 음모를 고해바쳤다. 의회는 즉각 청문회를 열어 진상을 따졌다. 맥과이어는 술김에 한 말이라며 조크도 못하느냐는 식으로 딱 잡아뗐다.



 심증은 갔으나 물증이 거의 없어 청문회는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한 루스벨트의 반응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길이 없다. 하도 어이가 없어 대꾸할 가치조차 못 느꼈던 모양이다.



 일부 언론은 이 사건을 ‘비즈니스 플롯 (Business Plot ·기업의 음모)’라고 점잖게 표현했으나 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는 ‘칵테일 푸치’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취하지 않고는 생각해낼 수 없는 황당한 얘기라고 해서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돼 정치판이 요동을 치고 있다. 그 내용이 유치하기 짝이 없어 한국판 ‘칵테일 푸치’라고 불러도 될 성싶다. 취중 발언이거나 돌지 않고서는 이 같은 모의를 도저히 꾸밀 수 없을 것 같아서다.



그 당 대표도 ‘농담’으로 한 말이라고 둘러댔지만 수사당국이 녹음파일을 증거물로 제시해 꼼짝없이 걸려들었다. 유·무죄 판단을 떠나 아무래도 정신과 치료부터 먼저 받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박용필 LA중앙일보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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