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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시리아는 우리 문제다

중앙일보 2013.09.06 00:31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8월 20일 시리아에 화학무기 사용은 미국이 용납 못할 금지선이라고 경고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째 되는 지난달 2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교외 구타에 화학무기의 불벼락이 떨어졌다. 주민들은 질식하고 경련을 일으키며 입에서 거품을 뿜었다. 전형적인 사린가스 희생자의 묵시록적 모습이었다. 어린이 400명을 포함한 1400명이 그렇게 죽었다.



 미국과 프랑스와 유엔 조사단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군이 반정부군에 화학무기 공격을 한 것이라는 심증을 굳혔다. 세계의 이목이 당연히 오바마에게 쏠렸다. 시리아가 금지선을 넘었으니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의 시리아 응징은 기정사실로 생각됐다. 실제로 지중해 동부에 순항미사일 토마호크를 탑재한 구축함 4척과 핵잠수함이 배치됐다. 미국 본토에서는 B-2 스텔스 폭격기가 발진 태세를 갖췄다. 아사드 응징은 초읽기로 보였다.



 그러나 영국 의회가 8월 29일 표결로 시리아 공격에 반대하면서 사정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오바마가 발목이 잡힌 것이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발을 빼고 프랑스와 터키만 미국 편에 남았다. 미국 여론도 50% 이상이 시리아 공격 반대로 나타났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피로현상의 반영이다. 오바마는 미국 단독으로 아사드 정부의 반인류적인 범죄를 응징하느냐,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치명적인 신뢰 상실을 각오하고 공격을 단념하느냐의 갈림길에서 협소한 제3의 길을 택했다. 의회에 시리아 공격 승인을 요청하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그걸 본 아사드 정부는 즉각 승리를 선언했다. 시리아의 확고한 저항 의지 앞에서 오바마가 꼬리를 내렸다고.



 시리아는 축배를 너무 일찍 들었는가. 답은 미국 의회에 달렸다. 초기의 어둡던 전망이 조금 밝아졌다. 상원 외교위원회가 4일 시리아 공격을 승인했다. 하원에서는 공화당 소속인 의장과 원내대표가 오바마 지지로 돌아섰다. 아직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의원들을 설득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결국은 오바마가 웃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는 최장 90일이라는 시한과 지상군은 투입하지 않는다는 약속으로 의회와 여론을 설득하고 있다. 시라아 작전의 목표는 아사드 축출(Regime change)에서 후퇴해 시리아군의 지휘통제 시설들로 한정될 것이다. 20~30개소의 화학무기 저장기지는 공기 중에 유출될 사린가스의 위험 때문에 파괴할 수가 없다. 20만 명이 사망하고 200만 명의 난민을 낸 시리아 내전을 종식시킬 장기전략이 없는 것이 시리아 작전의 최대 약점이지만 오바마로서는 차선으로 만족해야 할 처지다.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는 오바마의 우유부단한 태도로 미국의 신뢰가 크게 흔들리는 것이다. 오바마는 기껏 저지선을 설정해 놓고도 시리아가 저지선을 넘었지만 국내외 여론 눈치를 보다가 효과적인 응징 시기를 놓쳤다. 전후의 세계질서, 특히 아시아와 유럽의 안정은 미국의 방위공약에 대한 동맹국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돼 왔다. 그 신뢰가 시리아에서 휘청거린다. 한국같이 안보를 미국의 공약에 의지하는 나라에는 심각한 사태다.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이다. 북한의 화학무기 보유량은 시리아의 2.5배 정도다. 북한은 시리아와 함께 1992년 체결된 유엔 화학무기금지조약(CWC)에 서명하지 않은 4개국 중 하나다. 핵탄두와 달리 화학무기는 야포와 로켓 및 항공기로도 운반된다. 북한은 시리아에 미사일과 화학무기 생산 장비를 지원해 온 나라다. 김정은은 시리아에서 결단을 주저하는 오바마를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우리가 침묵하면 북한과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을 명분이 약해진다”고 경고했다. 척 헤이글 국방장관도 “미군 2만8000명이 주둔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북한이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리와 헤이글의 경고가 여론과 의회 설득을 위한 전술적 과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95년 일본의 신흥종파 옴진리교 광신도가 도쿄 지하철 차량에 뿌린 약간의 사린가스로 순식간에 13명이 죽고 6000명이 부상당한 사건을 되돌아 보라.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국가와 단체를 응징하는 것은 정치·군사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요 가치의 문제다. 미국이 유엔 결의를 기다리고 여론의 지지와 의회의 승인을 받는 국제법적·정치적 절차에 걸려 눈앞에서 벌어진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를 팔짱 끼고 방관하거나 응징의 시기를 놓친다면 그것은 제2, 제3의 아사드들에게 참으로 고무적인 일일 것이다. 미국의 신뢰가 걸려 있는 시리아 사태는 우리에게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시리아는 우리 문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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