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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제2의 이석기' 또 나올까

중앙일보 2013.09.06 00:29 종합 29면 지면보기
안희창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김일성 장군님의 위대성을 알고 있니.”



 “잘 모르겠는데… 그런데 왜 그따위 얘기를 하지.”



 “그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정치부 기자가 됐냐.”



 “너 돌았냐.”



 정치부 기자로 국회에 출입하던 1986년, 고교 졸업 후 10여 년 만에 모교 행사에서 만나 술자리를 함께한 친구와 주고받은 대화다.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이석기 사태’를 보면서 27년 전의 불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3 때 공부도 잘했고 성품도 좋아 반장을 했던 친구가 10여 년 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이른바 ‘주체사상파’로 둔갑한 것이다. 그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 정확한 배경은 잘 모른다. 다만 대학생일 때 집시법 위반으로 제적을 당했고, 그 여파로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했다는 얘기만 들었다.



 이 친구가 기자에게 한 얘기는 이석기 의원이 받고 있는 혐의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김일성은 만주에서 항일 빨치산 활동을 했는데, 이승만은 친일파를 기용하고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 출신이니 김일성이 위대하지 않으냐’라는 게 요지였다. 어찌 보면 ‘원론’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의원이 받고 있는 혐의는 ‘국회를 혁명의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 등 내란모의 수준이다. 이 의원 집단은 교묘한 선전선동과 일부 국민의 지지로 국회에 교두보를 설치하고 영장집행 등 합법적 공권력 집행에 극렬 저항하고 있다.



 이 의원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는다고 해서 그로 상징되는 주사파가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남은 과제는 ‘제2의 이석기’가 나오지 않게 할 수 있는 백신을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있느냐다. 간단치 않은 과제라고 본다. 우선 6·25전쟁의 후유증과 남북 분단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북한을 동경하는 세력이 원초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체제가 되었다. 6·25전쟁의 후유증은 시간이 더 흘러가면 해소되겠지만 분단이 유지되는 한 ‘제2의 이석기’가 나타날 가능성은 상존한다. 분단은 이 의원처럼 발달장애나 소영웅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자신을 우쭐하게 만드는 데 소재가 된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건강성이 약화되면 ‘제2의 이석기’가 출현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원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공안사건을 대처하는 데 일정 부분 취약성을 갖고 있다. 체제를 타도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구사하는 상대방에 대해 인권과 법적 절차를 지켜가면서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북한의 권력층도 이번 ‘이석기 사태’를 보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결코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전쟁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치겠다는 사람들은 용서할 수 없다”고 했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남측 입장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장점이 구현되고 건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중에서도 부정부패 척결과 빈부격차 해소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러시아 혁명이나 베트남 전쟁에서 여실히 드러난 사실이지만, 공산주의가 발호하는 데 일등공신은 부정부패와 가난이다. 이런 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원전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는 고무적이다. 서울대 박세일 교수는 지난 6월 한 세미나에서 “경제전에서는 한국이 북한을 앞서고 있으나, 사상전에서는 북한이 앞서고 있고, 군사전에서는 한국이 불리하다”고 진단한 적이 있다.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기 전까지는 남북 간의 체제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이석기 사태’는 이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안희창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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