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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신인 데뷔무대인가, 무한 잔혹극인가

중앙일보 2013.09.06 00:11 종합 21면 지면보기
이경희
문화부문 기자
YG엔터테인먼트에서 새 남자그룹을 데뷔시키는 방법으로 공개 서바이벌을 선택했다. 수년간 트레이닝을 거친 연습생 11명을 A팀과 B팀으로 나눠 경쟁시키고, 그 중 한 팀을 ‘Winner(승자)’라는 이름의 팀으로 뽑는 것이다. 케이블 엠넷과 포털 다음(Daum)을 비롯해 아시아 10여 나라에 방송 중인 ‘WIN’(Who IS Next)이 6일 제3회 방송을 앞두고 있다.



 ‘슈퍼스타K’ ‘K팝스타’ 같은 오디션에선 탈락해도 ‘내년에 다시 도전하면 되지’란 희망이 있었다. 반면 WIN의 두 팀은 “지는 팀은 루저(패자)라 낙인 찍힐 것이다. 지면 끝”이라며 배수진을 친다. 양현석 사장은 “YG는 4년마다 그룹을 데뷔시킨다”고 못 박는다. 빅뱅이 약 8년 전, 2NE1이 4년 전 데뷔했다.



 이번에 승자가 되지 못하면 4년을 기다려야 한다. 4년 뒤라고 데뷔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B팀조차 목숨 걸고 나설 수밖에 없다. A팀엔 ‘슈퍼스타K’ 출신 강승윤, ‘K팝스타’ 출신 이승훈도 포함됐다. 서바이벌을 통과한 이들은 연습생 시절을 거쳐 또 다시 서바이벌 무대로 내몰렸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WIN’의 B팀 연습 장면.
 최장수 연습생인 A팀 김진우는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다. 양 사장에겐 “노력에 비해 결과가 제일 없는 친구”란 혹평을 받는다. 프로그램 덕에 3년 만에 찾아간 고향에서 아버지를 보자마자 눈물을 줄줄 흘린다. 미국에서 홀로 한국에 온 B팀의 바비도 가족과 화상통화를 하다 눈물을 쏟는다. 그는 만 18세다.



 양 사장은 “군대 갈래, 무대 설래”라며 몰아붙인다. 또 눈물바다다. “잔인한데 재미있을 것 같다”던 싸이의 기대처럼 보는 이의 마음은 한없이 불편해진다. 물론 진 팀이라 해도 방송이란 프레임 밖으로 나가면 루저는 아닐 것이다. 빅뱅의 선발 과정을 그린 ‘리얼다큐 빅뱅’에서 탈락한 장현승은 2009년 그룹 비스트로 데뷔했다.



 WIN의 출연자 역시 방송 2회 만에 적잖은 팬을 모으고 있다. 어설픈 기획사에서 데뷔하는 것보다 YG의 서바이벌에 출연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하지만 프레임 안은 기성세대가 젊은이의 꿈을 볼모 삼는 무한 잔혹극일 뿐이다. 게다가 시청자더러 선택을 하라며 칼자루를 쥐여준다. 무섭고도 씁쓸하다.



이경희 문화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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