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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우주소년 아톰' 50세 소시민이 되다

중앙일보 2013.09.05 00:32 종합 32면 지면보기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매끈한 피부에 똘망한 눈, 날개도 없이 하늘을 날며 지구를 지켰던 ‘우주소년 아톰’. 그도 어느덧 가장이 됐다. 배웅하는 처자식을 뒤로하고 오늘도 출근한다. 간밤에 회식을 했는지 오만상을 찌푸린 것이, 박카스라도 한 병 건네야 할 것 같다. 강직한 어린이 로봇의 천진한 표정은 온데간데없다. 현태준의 ‘우주소년 아…부지’다.



 아톰은 1951년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蟲·1928~89)가 만화 연재를 시작하면서 세상에 나왔다. 1963년 일본 최초의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총 193편의 시리즈로 방영됐다. 아톰 방송 50주년을 기념해 도쿄도현대미술관에선 ‘만화의 힘’전을 열고 있다. 어느덧 50세, 만화 주인공도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이만 먹었을 뿐 하늘의 뜻은커녕 땅의 사리도 분별하기 어렵다. 배경의 허름한 집들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처럼, ‘아…부지’가 된 아톰의 현재와 미래는 불확실하다. 지구를 구하는 명분 충만한 전쟁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을 구하기도 급급한 나날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소시민 아톰이다. 그저 하루하루 수고하는 수밖에.



현태준, 우주소년 아..부지, 2006, 80×60㎝, 종이에 펜, 디지털프린트.
 미술관의 아톰 전시는 만화 원화전이 갖는 밋밋함을 해소하고자 다각도로 노력한 티가 났다. 액자 대신 아톰이 태어났을 것 같은 투명 캡슐 안에 원화를 넣어 전시했다. 전시장의 설명 패널도 만화로 그렸고, 데즈카 오사무의 집을 70% 축소한 모형도 세웠다. 만화가가 유년기를 보낸 방에는 당시의 라면, 사이다, 양은 주전자까지 가져다 놓았다. 이쯤 되면 아톰도 향수 상품이다.



 아톰은 한국의 현대미술에서도 사랑받는 아이콘이다. 아톰과 동심을 함께한 젊은 미술가들이 주력이다. 이동기(46)의 ‘아토마우스’는 아톰과 미키마우스의 결합체로 93년 태어났다. 그림 속 아토마우스는 국수를 먹으며, 비눗방울처럼 가볍게 캔버스 위를 떠다닌다. 이 한국적 팝아트는 캐릭터 상품 아닌 미술품으로 주요 전시공간과 미술시장에서 각광받는다. 현태준의 ‘아…부지’는 이와 달리 B급 정서 충만하다. ‘미술계 싸이’로 한국적 장난감 수집계의 거물인 이 작가의 정체성을 닮았다.



 만화 속 아톰의 생일은 2003년 4월 7일이다. 제작 당시 먼 미래로 상정됐을 시간이다. 이제 아톰은 미래가 아닌 과거를 산다. ‘빨리빨리’라는 기성 가치가 휩쓸고 간 뒤안길에서 ‘변형 아톰 미술’을 시도했던 젊은이들도 이제 쉰을 바라보는 아저씨가 됐다. 아저씨와 막상막하(莫上莫下)인 이 아줌마는 그림 보고 킬킬 웃다 문득 짠해진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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