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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탈북 조금 빨랐으면 부모님 뵀을 텐데"

중앙일보 2013.08.26 01:04 종합 10면 지면보기
“만나면 어떻게 살았는지 정말 물어볼 말이 많습니다.”


오대양호 전욱표 동생 성표씨
형제들 함께 고향에 집 준비

 1972년 12월 납북됐던 오대양호 선원 전욱표(68)씨의 동생 성표(55·사진)씨. 그는 형이 최근 탈북해 곧 돌아올 것이란 소식에 대해 첫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지난 24일 그가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부산 동아대 병원에서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다.



 욱표·성표씨는 모두 5형제다. 욱표씨가 둘째, 성표씨는 넷째다. 성표씨가 형의 탈북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언론 보도를 통해서였다. 셋째 형 형표(63)씨로부터 “둘째 형 소식이 신문에 났으니 보라”는 전화를 받고 신문을 읽어봤다. 탈북한 욱표씨는 지난 11일 압록강을 건너 중국을 거쳐 3국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월 24일자 5면



 “41년 동안 소식을 몰랐는데 믿을 수 없었습니다. 형이 납북된 후 부모님은 안방에 형 사진을 항상 걸어뒀지요. 사진 속 형은 젊고 지금은 나이가 들었지만 우리 형제들의 특징인 두툼한 코는 그대로이더군요.”



 둘째 형이 납북됐을 때 성표씨는 14살이었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 농소마을에서 자라던 때였다. 큰형이 일찍 타계한 뒤 둘째 형 욱표씨는 군에서 제대하고 집안 농사일을 거들다가 배를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많이 탄 오대양호가 납북됐다는 소식을 듣고도 형이 거기 포함됐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부모님도 별 말씀이 없었지요. 둘째 형 사진을 닦으며 눈물짓는 부모님 모습을 보고서야 뒤늦게 알아챘습니다.”



 어머니는 “욱표 언제 오노” 하시며 많이 울었다. 무뚝뚝한 아버지도 술만 마시면 형을 그리워했다. 어머니는 2007년, 아버지는 2008년 둘째 형이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세상을 떴다. “형이 조금 빨리 탈북했다면 생전에 부모님을 만나뵙고 마음의 짐을 덜어드리지 않았을까 합니다. 형이 돌아오면 경남 창원 공원묘지에 있는 부모님 묘소부터 찾을 생각입니다.” 성표씨는 고향인 경남 거제도 농소마을에 집을 알아보고 있다. 형제들과 힘을 합쳐 형의 고향 정착을 돕기 위해서다.



부산= 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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