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클래식 음악이 질색인 사람도 다 읽고 나면 ‘개종’하게 될 걸

중앙선데이 2013.08.24 00:35 337호 26면 지면보기
저자: 요아힘 카이저 역자: 홍은정 출판사: 문예중앙 가격: 1만4000원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제1번’ 첫 소절이 울리고 나면, 백발의 노인이 화면에 등장한다. 검은 뿔테 안경을 낀 그는 그랜드 피아노를 등지고 앉아 종이에 적힌 질문 하나를 읽고는 이에 답하기 시작한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는 억양. 영상은 “경청해 주어서 고맙다”는 짤막한 인사로 끝난다. 독일 최고의 음악 비평가 요아힘 카이저(85)가 진행한 ‘카이저의 클래식 수업’이다.

『그가 사랑한 클래식』

2009년 독일 ‘쥐트도이체 차이퉁 매거진’은 독자들로부터 클래식 음악에 대해 궁금했던 질문을 받아 카이저가 답하는 비디오 칼럼을 개설했다(sz-magazin.sueddeutsche.de/blogs.kaiser). 이후 2011년 1월 막을 내리기까지 칼럼은 모두 여든일곱 번의 문답이 오갔다. 이 책은 그 연재물을 엮은 것이다.

‘음악 비평의 교황’으로 불리며 50년 넘게 활약한 카이저에게 던져진 질문들은 그야말로 다양했다. 왜 클래식 작품들에 ‘월광 소나타’ 같은 별칭이 있는 건지, 오페라 감상을 위해선 얼마나 알아야 하는 건지 등이 초보적 궁금증이라면 오페라 애호가들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를 ‘설탕물 같은 작품’이라고 비웃는 이유나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에 나오는 마르케 왕의 독백은 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은 질문조차 난해하다.

페이지를 건너뛸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 마음을 고쳐 먹는 건 저자의 조곤조곤한 설명 덕분이다. 할아버지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스토리 텔링은 물론이요, ‘알다시피’라는 식의 표현으로 잘난 척을 금기시한다. 특히 비유나 예시가 쉽고도 설득력 있다. 가령 ‘도돌이표 지시는 반드시 따르지 않아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치자. 카이저는 이렇게 말한다. “도돌이표는 기계적 동일성을 만들어내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도 ‘사랑해’라는 말을 같은 어조로 두 번씩 반복하지 않지 않는가. 두 번째 경우에는 좀 더 절박하게 아니면 무미건조하게 내뱉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일부러가 아니라면 달라지기 마련이다(p85).”

뭣보다 그는 솔직하다. 적어도 주례사식 비평이 아니다. 작곡가와 연주가에 대한 편애를 화끈하게 밝힌다. 카라얀이 과대 평가된 지휘자였다는 삐딱한 시선엔 “그의 빈자리는 조지 버나드 쇼나 토마스 만의 죽음으로 인한 것만큼이나 크다”고 말하고, 슈만 작품을 언급할 땐 베토벤·모차르트·바그너보다 더 좋아하는 오랜 팬이었음을 고백한다. 이렇게 사적인 호감을 밝힌 글 속에는 애정의 깊이만큼이나 비하인드 스토리가 깨알같이 녹아 있다. 주관에 치우칠까 싶지만 왜 오케스트라나 음반사가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자들만 섭외하는가라는 날카로운 지적에는 “튀느니 무난한 중도를 택하는 악수”라며 자성할 줄도 아는 그다.

문답 말미마다 ‘클래식, 들어볼까요’라는 제목의 추천 곡이 하나씩 적혀 있다. 클래식 문외한도 책을 읽고 나면 마음이 동한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두 손이 교차되는 고도의 연주곡임을 알게 되면 한 번 들어볼까 싶다. “CD플레이어에 클래식 음반 한두 장을 밀어 넣거나, 오페라 공연이나 연주회에 직접 가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거나, 혹은 악기를 직접 만져볼 마음까지 생겼다면, 내 목표는 이루어진 셈”이라 했던 카이저의 전략이 딱 먹히는 셈이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