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운명은 필연이 아니더라

중앙선데이 2013.08.24 00:48 337호 28면 지면보기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대 런던에서 배우 겸 극작가로 활동했으며, 평생 37편의 희곡과 여러 권의 시집을 남겼다. 『맥베스』는 『햄릿』 『오셀로』 『리어왕』과 함께 그의 4대 비극으로 꼽힌다.
아, 내 운은 여기까진가? 문득 이런 체념 비슷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다른 길이 숱하게 열려 있었다. 조금만 더 숙고하고 저항했더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고개 숙이지 않았을 텐데….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42>『맥베스』와 윌리엄 셰익스피어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지워버리고 셰익스피어를 읽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셰익스피어가 창조해낸 비극 속 주인공들을 대면한다. 이들 역시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 이끌려 파멸하고 마는데, 오늘은 『맥베스(Macbeth)』다.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가는 정직한 영혼 맥베스 장군에게 세 마녀가 다가올 운명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는 크게 놀라지도, 믿으려고도 않는다. 그러나 코도의 영주가 될 것이라는 두 번째 예언이 실현되자, 곧 왕이 될 것이라는 세 번째 예언에 흔들린다. “눈앞의 공포보다 끔찍한 상상이 더 무서운 법이다.”

마침내 맥베스는 자신이 충성을 바쳐왔던 스코틀랜드의 덩컨 왕을 시해하는 역적의 길을 걷고, 자신의 왕좌에 걸림돌이 될지도 모를 동료 장군마저 죽인다. “자, 운명아, 결전장에 들어와 나와 한번 끝까지 겨뤄보자!”

맥베스는 이처럼 야심이라는 인간 본성에 사로잡혀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지만 곧 양심이라는 또 다른 영혼의 본성에 붙들려 번뇌하고 괴로워하다 마침내 자신의 죄악과 가책을 이겨내지 못하고 운명에 질식해 죽음을 맞는다.

“내일과 또 내일과 그리고 또 내일은 이렇게 옹졸한 걸음으로 하루, 하루, 기록된 시간의 최후까지 기어가고, 우리 모든 지난날은 바보들의 죽음으로 향한 길을 밝혀주었다. 꺼져라, 짧은 촛불! 인생이란 그림자가 걷는 것, 배우처럼 무대에서 한동안 활개치고 안달하다 사라져버리는 것, 백치가 지껄이는 이야기 같은 것, 소음, 광기 가득하나 의미는 전혀 없네.”

맥베스는 사실 우리와 똑같은 감정과 이성을 지니고 똑같은 야망과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다. 그는 우리를 대신해 운명이라는 힘과 싸운다. 우리는 감히 하지 못하지만 그는 과감히 벼랑 끝까지 나간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를 꼼짝 못하게 짓누르는 무시무시한 힘을 향해 한판 승부를 벌이다 쓰러지는 것이다.

맥베스 부인은 또 어떤가. 남편을 부추겨 왕을 죽이게 한 뒤 자신도 죄책감에 사로잡혀 몽유병에 시달리는데, 마지막 순간 실성한 그녀는 씻어내도 씻어내도 자신의 손에 핏자국이 남아있다고 느낀다.

“여기에 아직도 핏자국이, 저주받은 핏자국아, 없어져라! 제발 없어져! 하나, 둘, 아니 해치울 시간이 됐잖아. 지옥은 캄캄해. 저런, 폐하, 저런! 군인인데 두려워해요? 누가 알든지 두려울 게 뭐예요. 아무도 우리의 권력을 시비할 수 없는데? 그런데 그 늙은이 몸에 그렇게도 피가 많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맥베스 부인의 부르짖음은 계속 이어진다.

“아직도 여기에 피 냄새가 남았구나. 아라비아 향수를 다 뿌려도 이 작은 손 하나를 향기롭게 못하리. 오! 오! 오! 누가 문을 두드려요. 끝난 일은 돌이킬 수 없다고요.”

맥베스 부부는 어쩔 수 없는 숙명 앞에서 비극적이고도 끔찍한 결말을 맞이하지만 이들에게도 도망칠 수 있는 작은 문이 열려 있었다. 양심의 불꽃이 끊임없이 이들을 괴롭혔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슬픔과 동시에 공감을 느낀다. 운명은 전적으로 필연은 아니었으며 이들에게도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향한 찬사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대영제국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던 작가라는 것일 텐데, 이건 잘못된 표현이다. 이 말을 처음 한 토머스 칼라일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영국인들에게 물었다. 인도 식민지를 포기하겠는가, 아니면 셰익스피어를 포기하겠는가? 다시 말해 인도 식민지가 없는 게 좋은가, 아니면 셰익스피어 같은 인물이 없는 게 좋은가?

그러고는 이렇게 답했다. “인도 식민지야 있든 없든 상관없지만 셰익스피어가 없이는 살 수 없다! 인도 식민지는 어차피 언젠가는 사라지게 돼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 머문다. 따라서 우리는 셰익스피어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셰익스피어는 우리가 이룩한 가장 큰 업적이다.”

그러나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바친 찬사에는 미치지 못한다. “만약 인류가 신 앞에서 인간의 권리를 대변할 사람을 하나 보내야 한다면 아마 셰익스피어를 파견했을 것이다. 만약 우주에서 행성 간 회의가 열린다면 우리 행성을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역시 그일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에게 이런 찬사가 쏟아지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후의 명성이나 영광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차피 백치가 지껄이는 소음과 같은 것이거늘.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