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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술자리 대화 대신 수시로 통화 ‘전화 정치’

중앙선데이 2013.08.24 23:27 337호 4면 지면보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한 외국 정상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북한이 저렇게 나왔네요. 이렇게 대응하는 것이 어떨까요?”

박근혜 대통령 취임 6개월 국정 스타일

 “지난번 모 외국 정상과 회담 때 이달 중 양국 교류 행사를 하기로 했는데 그건 어떻게 됐나요?”

 류길재 통일부·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은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이런 전화를 자주 받는다. 밤 9시 뉴스에서 북한의 긴급발표가 보도된 직후나, 해외출장을 위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직전이나 때를 가리지 않는다. 다른 장관이나 수석들도 마찬가지다. 현안이 많은 수석은 하루에 4~5번씩 전화를 받는다.

 박 대통령의 전화는 “이렇게 하라”는 명령문 대신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라고 묻는 식의 의문문이 특징이라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박 대통령은 주말에도 수석들에게 전화를 한다. 토요일 점심을 전후한 시각에 자주 하지만 급한 사안이 생기면 일요일에도 대통령의 전화가 걸려온다. 아침이나 한밤중에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11일 오전 7시쯤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이남기 홍보수석(당시)은 급히 한 방송사에 전화를 걸었다. 이날 박근혜정부에서 처음 열기로 한 국무회의 참석자 명단이 잘못 보도된 걸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아침에 방송 뉴스를 접한 박 대통령이 전화로 이를 지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 수석은 휴대전화에 대통령 번호가 뜨면 벨소리가 다르게 울리도록 해놓았다고 한다. 곧바로 전화를 받기 위해서다. 그는 펜과 종이도 늘 갖고 다닌다. 통화가 길게 이어질 경우 지시사항이 많아져 기억만으론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25일로 취임 6개월을 맞는 박 대통령이 그간 보여준 스타일은 ‘전화 정치’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 9명, 장관 17명이 모두 대상이다. 통화시간이 30분을 넘기는 경우도 많다. “대통령이 워낙 현안들을 깊이 꿰뚫고 있는 데다 기억력이 좋아 구체적인 수치까지 물어본다”고 한 수석은 전했다. 자신이 모르는 걸 대통령이 물어볼 땐 이실직고하는 게 상책이라고 한다. 어설프게 아는 척했다간 이어지는 질문 공세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통화하며 자연스레 업무 능력도 파악”
직접 면담보다 전화 통화를 선호하는 데서 드러나듯 박 대통령은 수석이나 장관들과의 회의에서도 감정을 표출하거나 특정인에 대한 호오(好惡)를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보고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엔 묵묵부답이거나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한다고 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그래도 회의에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 대화할 때는 뭔가 티가 나는 것 같다. 그걸 눈여겨본 기자들이 이달 초 박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진을 개편하자 ‘걱정됐던 인사들이 경질됐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친박계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전화 정치가 의원 시절부터의 습관이라고 말한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박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 하루 수백 통씩 걸려오는 전화를 응대하느라 팔에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전화 통화를 선호했다”며 “특히 당 관계자들의 전화엔 반드시 리턴콜을 해줬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박 대통령은 5선 의원을 지내며 국정 현안마다 그 배경과 연혁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 한정된 범위의 정책만 다뤄온 청와대 수석이나 부처 장관들이 대통령의 전화 질문을 어려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부대표는 “대통령 취임 이후 당 쪽으로는 전화를 하지 않는 걸로 안다”고 전했다. 4대 강 사업이나 미디어법 등 자신의 관심 사안과 관련, 여당 지도부에 자주 전화하며 진행 상황을 챙겼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박 대통령은 업무 라인이나 계통을 존중하는 스타일”이라며 “대통령이 된 만큼 국회는 당에 맡기고 자신은 청와대와 정부를 지휘한다는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여당 의원은 “박 대통령은 전화 통화를 통해 수석이나 장관들의 업무능력도 자연스레 파악했을 것”이라며 이달 초 청와대 비서진 개편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의 한 관계자가 전하는 말이다. “박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처럼 밤에 수석 또는 장관들과 따로 만찬과 반주를 곁들이며 스킨십을 쌓는 스타일이 아니다. 대통령은 밤에 함께 시간을 보낼 가족이 없는 데다 친구도 만나는 일이 적다. 퇴근 뒤엔 TV 뉴스를 보거나 보도 내용에 관해 보고를 받는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주로 전화를 통해 소통을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박 대통령도 밤중에 청와대로 장관들을 부른 경우가 있지만 이는 긴급하고 중요한 현안을 논의해야 할 때였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전화 정치’에 대해 야권에선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불통(不通)의 상징 아니냐”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청와대 고위 비서진 37명이 모두 정치색 없는 참모·관료형 인사들로 채워진 점을 거론한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수석은 “이견이 있는 경우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얘기를 넣거나 편지·e메일 등의 경로로 얘기하면 대부분 의견이 수용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과거 다른 정부도 수석이나 장관이 대통령 면전에서 바로 ‘그건 아니다’고 직언하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수석도 “여러 차례에 걸쳐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대통령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며 “다만 남자들끼리 통하는 ‘다 그런 것 아니냐’식의 설득으론 안 되고 대통령이 이해되게끔 설명해야 받아들여진다”고 전했다.

역대 대통령들 소통법은 제각각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인터폰으로 수석들을 불러 집무실에서 지시를 내리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당시 정무수석을 지낸 이원종씨는 “대통령 말씀에 이견이 있으면 예의를 갖춰 대안을 제시하는 게 당시 청와대 문화였다”며 “그러면 YS는 ‘알겠다. 검토해보지’ 하거나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나’라며 즉답을 피했다”고 전했다. YS는 밤에 수석·장관들을 불러 반주를 곁들이며 얘기하는 자리를 만들곤 했다. 상도동계 출신의 수석이나 장관들은 대통령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눴지만 교수나 관료 출신의 수석·장관들은 YS를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뚜렷했다고 이씨는 회고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뒤편 사저에 장관이나 수석을 따로 불러 장시간 대화하는 게 특징이었다고 당시 청와대 부속실장을 지낸 고재방씨는 전했다. 고씨는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서 장관·수석을 부르면 20~30분간 의례적인 보고에 그쳤다. 반면 사저 거실이나 식당에서 독대할 경우 장관·수석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충분히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임자들에 비해 시스템을 통한 소통을 선호했다. 현안이 생기면 청와대 전산망인 이지원(e知園)에 이를 띄워놓고 관계 부처 장관과 수석들이 의견을 올리도록 한 뒤 이를 종합해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긴급 사안에 대해선 측근들과 즉석 회의를 통해 결정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는 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기업인 출신답게 탄력적인 소통 방식을 선호한 편이다. 당시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씨는 “급한 현안이 생겨 대통령 부속실에 면담을 신청하면 금방 대통령과 독대해 보고할 수 있었다. 또 회의에선 수석들이 반대 의견을 마음 편히 개진하고 대통령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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