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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잡겠다던 진짜 ‘호랑이’는 따로 있다?

중앙선데이 2013.08.24 23:33 337호 5면 지면보기
지난 22일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가 지난시 중급인민법원 재판정에 출석했다. 보시라이는 18개월 만에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왔다. 법원은 신장 1m86㎝의 보시라이가 왜소해 보이도록 건장한 법원경위를 옆에 세웠다. OK 사인을 하는 듯 세 손가락만 편 보시라이의 왼손 동작도 화제가 됐다. [AP=뉴시스]
보시라이 재판을 놓고 ‘반부패 정치쇼’라는 해석이 많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3일 해설기사에서 보시라이 공개재판에 대해 “‘호랑이와 파리를 함께 척결하겠다’고 한 시진핑(習近平) 정권이 부패로 잃은 당의 위신을 회복하고 정권의 응집력을 높이려는 ‘정치쇼’”라고 보도했다. 이는 보시라이의 죄목과 관련이 있다. 충칭시 당 서기 시절의 직권남용과 부인의 살인사건에 대한 조사 방해 등 핵심적 범죄 혐의가 제외된 것은 시진핑 정권이 보시라이를 지지하는 당·군부 세력과 타협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보시라이 재판 막전막후

‘정치쇼’로만 볼 수 없다는 평가도 많다.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보시라이 재판은 정치국위원도 법 적용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공산당의 법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웨이보(微博·중국식 트위터)를 통해 재판을 공개한 데 대해 홍콩의 친중국계 신문인 ‘대공보’는 “사건에 자신이 있고 반부패 교육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조치”라고 말했다.

“보시라이, 아들 보호 대가로 시진핑과 거래”
보시라이가 예상과 달리 재판에서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자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권력투쟁설이 흘러나왔다. “시진핑 체제는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데 우려하고 있다. 죽은 호랑이에 불과한 보시라이 재판을 지금 연 이유다. 호랑이 가죽을 보여줘 대중적 지지를 얻으려는 조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 보시라이와 함께 자랐다는 태자당 지인의 말을 인용해 권력투쟁설을 내비쳤다. 보시라이의 법정 반박은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데 대한 반발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9월 28일 열린 중국공산당 정치국회의에서는 중앙기율위가 제출한 ‘보시라이의 엄중한 기율위반에 대한 심사보고’가 통과됐다. 당시 보고서는 보시라이에게 ▶왕리쥔 사건과 구카이라이 살인 사건 당시 직권남용 ▶거액의 뇌물수수 ▶금품 횡령 ▶다수의 여자와 정당하지 않은 성관계 ▶조직·인사 기율 위반 ▶기타 범죄 연루 등 여섯 가지 범죄 혐의를 열거했다. 법정에서 보시라이에게 적용된 세 가지 혐의보다 훨씬 많다.
중국의 정치평론가 장리판(章立凡)은 “보시라이의 기소액수 2500여만 위안은 지난 6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류즈쥔(劉志軍) 전 철도부장의 수뢰 액수 6460만 위안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보시라이에게 중형을 선고하지 않기 위한 물밑 타협이 있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럴 경우 보시라이는 유죄 인정 대가로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받을 수 있다.

중국의 고전 삼국지에는 군량이 부족해진 조조(曹操)가 무고한 군량감독관 왕후(王垕)를 처벌해 군의 사기를 높이는 장면이 나온다. 조조는 처형장으로 향하는 왕후에게 “안심하게. 아내와 자식은 잘 돌보겠네. 자네는 안심하고 길을 가게나”라고 말한다. 보시라이의 아들 보과과(薄瓜瓜·25)가 거래 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보과과는 지난해 5월 24일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언론에서 사라졌다. 보시라이가 공식 기소된 날(7월 25일)로부터 나흘 후인 29일 뉴욕타임스는 ‘보과과가 컬럼비아대 법학대학원에 합격했으며 오는 9월 입학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재판 첫날 공개된 보시라이 기소문에는 보과과가 쉬밍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적시돼 있다. 보과과의 처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홍콩의 한 시사지는 최신호에서 중국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시라이가 기소된 직후 보과과의 컬럼비아대학원 합격이 보도된 것은 보시라이와 시진핑 측의 거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보시라이는 천시퉁(陳希同) 전 베이징 당 서기, 천량위(陳良宇) 전 상하이 당 서기에 이어 1978년 개혁·개방 이래 부패 혐의로 사법처리된 세 번째 공산당 정치국위원이다. 중국 지도부 가운데 정치국위원은 보통 20명 내외(현재 25명)의 최고위직이다. 천시퉁·천량위는 각각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낙마했다. 반면 보시라이는 시진핑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경우가 아니다. 후진타오가 집권하던 지난해 2월 심복이었던 왕리쥔이 청두(成都) 미국 영사관에 잠입해 망명을 요청한 사건 때문에 낙마한 케이스다. 그의 범죄 혐의가 정치적 논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98년 16년형을 받고 친청(秦城) 감옥에 수감됐던 천시퉁 전 서기는 건강상의 이유로 2006년 가석방됐다. 이후 베이징 인근 최고급 샤오탕산(小湯山) 요양원에 있는 3층 건물에다 개인비서, 운전기사, 요리사를 두고 생활했다. 지난 6월 초 사망한 천시퉁은 지난해 홍콩에서 야오젠푸(姚建復) 전 국무원발전중심 연구원을 통해 구술 회고록을 출판했다. 천시퉁은 이 회고록에서 “내 재판은 불공정했으며 문화대혁명 이래 당내에서 가장 원통한 사건”이라며 부패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천시퉁 사례는 이번 재판 이후 보시라이가 걷게 될 앞날을 보여준다. 보시라이 역시 지금 당장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훗날 복당(復黨)·복권(復權)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다질 가능성이 크다.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무슨 일이
중앙당교 기관지인 학습시보(學習時報)의 덩위원(鄧聿文) 전 부편집장은 ‘중국공산당이 보시라이 재판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세 가지를 고려했다’고 분석했다. “첫째, 공산당 이미지다. 보시라이의 부패 혐의 액수가 지나치게 크면 당 이미지에 치명적이고, 지나치게 적으면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둘째, 태자당과 원로 그룹의 이익이다. 만일 태자당인 보시라이에게 가혹한 판결을 내리면 태자당을, 가벼운 판결을 내리면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셋째, 정치적 반대자다. 정적(政敵)이 정권의 발목을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보시라이 재판의 또 다른 변수는 올가을 있을 중국공산당 제18차 3중전회(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다. 이번 3중전회에서는 시진핑 집권 1기(2013~2017년) 동안 추진할 총체적인 정치노선이 결정된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행사를 앞둔 시진핑 주석에게 보시라이 사건은 빨리 해결해야 할 부담거리다. 이달 초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열린 중국 최고지도부 회의에선 3중전회를 위한 경제·사회개혁과 반(反)부패 조치가 주로 논의됐다는 소식이다. 그중엔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앙정법위원회 서기가 정치국 상무위원급으로는 처음으로 사법처리될 수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시진핑이 잡겠다는 ‘호랑이’는 보시라이가 아니라 저우융캉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럴 경우 중국 정계는 또 한 번 소용돌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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