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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예산 탓 교육청·지자체·업자 갈등 심화 … 사회적 재합의 시급

중앙선데이 2013.08.24 23:41 337호 6면 지면보기
23일 경기도 구리시 인창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 배식을 하고 있다. 구리시는 올해부터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시행 중이다. 최정동 기자
재료 공급부터 이해당사자 갈등
22일 오후 9시30분 서울 강서구 외발산동 서울시 친환경유통센터 제1센터에 트럭 한 대가 도착했다. 양배추, 쪽파, 감자, 대파 등이 담긴 수백 개의 상자가 창고에 내려졌다. 모두 ‘올본’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서울시 친환경유통센터의 인증을 거쳤음을 뜻하는 브랜드다.

논란 재점화한 무상급식 … 현장 살펴보니


오후 11시30분이 넘자 맞은편 제2센터에 트럭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친환경이 아닌 일반 농산물이다. 직원들이 긴장했다. 물량도 많은 데다, 7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친환경센터를 거친 농산물 6종에서 기준 이상의 잔류농약을 적발,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이날은 총 109개 품목에 대해 검사가 실시됐고 농약 검출은 없었다.

서울시 친환경유통센터는 공공기관이지만 급식재료 유통의 ‘큰손’이기도 하다. 무상급식을 하는 초·중학교 등 서울시내 840여 개 학교에 농축산물을 공급한다. 무상급식 대상학교의 60% 정도다. 가공식품 등은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금액 기준으로 전체 무상급식 예산의 15~20% 정도의 거래를 관장한다. 학생들에게 친환경 유기농 제품을 먹이자는 취지로 2010년 활동을 시작했고, 매년 규모를 키우고 있다. 전국에 여기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 20여 곳이다. 무상급식의 병참기지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러 이유로 구설에 오르고 있다. 농약 검출 사건 외에 친환경 유통센터와 거래하는 업체의 선정이나 운영방식·수수료 수입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서울시의회 최명복 교육의원은 “친환경유통센터라는 이름과 달리 일반 농산물도 취급한다면 일반 농산물 시장과 뭐가 다른가. 공공기관이 유통업에 끼어든 셈이다. 납품처와 배송 업체 선정과정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보수성향의 시민단체인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은 이달 6일 “전면 무상급식 정책 도입을 주도한 일부 시민단체 인사들이 친환경유통센터 초기부터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식재료 공급 업체 선정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은 이를 받아들여 감사에 착수한 상태다. 서울시도 별도로 시민옴부즈만 감사를 진행 중이다. 지목받은 시민단체는 펄쩍 뛴다. 회원 중에 친환경유통센터 자문위원이 있었던 풀뿌리국민연대의 배병옥 상임대표는 “영리 목적의 기존 급식업자들과 보수 교육단체가 연결돼 친환경 무상급식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로 상대방이 급식업체와 연결됐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현재 서울에서 급식재료를 공급하는 배송업체만 200여 개. 하지만 서울시 친환경유통센터에서 관리하는 업체는 10여 개다. 서울에서만 연간 수천억원이 넘는 사업의 이면이다.

23일 오전 5시. 세찬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각 학교로 향하는 화물차들이 부지런히 서울시 친환경유통센터를 빠져나갔다. 각 학교에는 오전 7시에서 8시 사이면 도착한다.

학생·학부모 만족도는 괜찮은 편
23일 오전 8시, 경기도 구리시 인창중학교. 여러 대의 냉동탑차가 교문을 들어섰다. 영양교사와 조리사들이 1시간 동안 꼼꼼하게 재료를 들여다봤다. 김소영 영양교사가 ‘OK 사인’을 내자 조리가 시작됐다. 흰 조리복과 모자, 마스크, 장화 차림의 조리사들이 50㎡ 크기의 조리실로 투입됐다. 모든 과정은 위생관리시스템(HACCP)에 의해 메뉴에서부터 냉장고 온도, 운반 배식까지 철저히 관리된다. 2시간30분간의 조리가 끝난 후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조리실에서 각 층으로 연결된 화물 전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음식이 운반됐다.

낮 12시10분, 4교시가 끝나고 각 반 당번학생들이 음식을 교실로 옮겼다. 3학년 2반 서현주 담임교사는 “구리시의 3학년 무상급식은 올해 시작됐다. 학부모들이 많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학생 이서현(15)양은 “맛이나 품질이 괜찮은 것 같다. 무상급식 덕에 부모님이 부담을 덜어 더 기쁘다”고 말했다.

급식의 만족도는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연세대 연구팀에 의뢰해 조사한 ‘2012년 학교급식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학교 급식에 대한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82.9점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앞으로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영양교사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잔류농약 등 재료의 안전성 수준을 넘어서 유기농 등 친환경 재료를 써달라는 쪽으로 가고 있다. 최대한 친환경 농산물을 확보하려 하지만 가격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고 물가 상승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아이들 점심 한 끼 먹이는 값은 결코 싸지 않다. 서울 교육청은 내년부터 중학교 3학년을 새로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모든 초·중학교에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하기로 하고 5156억원을 책정했다. 만약 전국의 모든 초·중학생 504만여 명에게 서울(86만여 명)과 같은 무상급식을 하려면 3조원이 필요하다. 매년 물가에 연동한 비용 인상, 급식시설과 식당의 신설·유지·관리 비용은 뺀 최소한의 수치다. 친환경 농산물의 비중을 높이는 등 만족도를 유지하려면 더 큰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급식 확대로 학교 운영 예산 갈수록 빠듯
“볼 때마다 안타까워요.”

23일 경기도 부천시의 한 초등학교. A교장은 학교 건물 위쪽을 가리켰다. 꼭대기인 5층에만 창틀에 안전봉이 있고, 4층 이하에는 창문에 ‘위험’이라는 글자만 새겨진 상태다. A교장은 “4층 이하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 외에 복도나 화장실에는 설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부 안전봉을 설치하려면 수천만원이 들지만 그만한 재정적 여유가 없어서다. 놀이시설은 더 큰 문제다. 안전 점검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A교장은 “점검해서 문제가 생기면 모두 폐기해야 해요. 폐기하고 새 기구를 설치할 돈이 당연히 없죠. 다른 학교들도 검사를 뒤로 미루는 곳이 많아요”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지난해 안 쓰는 1층 교실 3개를 터 식당을 만들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이 많은 곳이라 무상급식의 시행이 큰 도움이 됐다는 게 A교장의 생각이다. 하지만 학교시설물 보수나 방과 후 교육 프로그램의 확충, 숙원 사업인 체육관 건립 등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역시 경기도의 한 중학교. B교장은 교실 천장만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오래된 학교라 천장 내장재에 발암물질인 석면이 섞여 있다. 바꾸려면 한번에 제대로 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전체 예산 중 시설비와 학교 운영비에 쓸 돈은 갈수록 줄고 있다. 2001년에 비해 교육청 전체 예산은 두 배로 늘었지만, 시설에 쓸 수 있는 예산은 거꾸로 절반이 됐다. 특히 초등학교 무상급식이 시작된 2011년부터 감소폭은 더 가파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 예산 자체가 늘 빠듯했는데, 기존에 없던 급식비 부담 수천억원이 생기니 다른 예산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기연 경기도 초등교장협의회장은 “친환경 무상급식의 이상을 탓할 수는 없지만 보편적 복지 때문에 정작 교육의 본질이 훼손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당장 안전을 위한 개·보수도 못하는데 무슨 교육이 가능하겠나”라고 말했다.

재정 부족한 지자체, 비용 분담 발 빼
예산 문제는 교육계 내부만의 사정이 아니다. 지자체와 교육청의 비용 분담은 더 큰일이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민선 교육감이 잇따라 무상급식을 내걸고, 이를 시행에 옮겼지만 예산이 국가 차원에서 확보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 지역이 교육청과 광역·기초 자치단체가 비용을 분담하는 형식으로 시행 중이다. 경기 침체와 세수 감소로 지방 재정이 악화되면서 손을 내젓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 16일 내년 예산에서 무상급식과 관련한 도의 지원분 874억원을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곧바로 ‘경기도의 무상급식 중단’ 가능성으로 번졌다. 경기도에 이어 인천, 경남, 부산 등도 현재보다 추가적인 무상급식 예산 지원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은 무상급식 시행여부에 대한 논란은 없지만 예산 갈등은 있다. 초등학교 조리종사자 인건비 항목을 두고 교육청과 시가 몇 년째 신경전을 벌인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중학교 조리사 인건비는 나눠 내는데 초등학교만 교육청이 다 내고 있다. 당연히 바로잡아야 하는데 서울시가 고집을 부린다”고 말했다. 서울시 친환경급식지원팀 관계자는 “2011년 무상급식을 전면 시행할 때 학부모가 내던 부분만 서울시와 지자체가 나눠 부담하는 걸로 했다. 당시 초등학교 조리종사자 인건비는 교육청이 내고 있었기 때문에 분담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경우 교육청은 내년에도 초등학교 조리종사자 인건비(약 400억원)를 전액 부담해야 한다. 빠듯한 교육청 예산 상황을 보면, 그만큼 다른 곳에 쓸 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역 간 격차와 갈등은 무상급식이 ‘보편적 복지’의 대표적인 예라는 점을 무상하게 한다. 양정호 성균관대(교육학) 교수는 “지자체별로는 물론 심지어 같은 지자체 안에서도 무상인 학교와 아닌 곳이 있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교육청과 지자체가 예산을 분담하는 것도 이상하다. 무상급식 관련 예산은 교육청으로 일원화하고 체계적·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에서도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복지냐, 의무교육이냐 가닥 잡아야
이런 문제를 큰 틀에서 손보겠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입장에 따른 상대방 탓만 흔하다. 최근 경기도의 ‘무상급식 지원 중단’ 선언을 두고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 판단이 엇갈린다.

불씨를 던진 경기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김동근 경기도청 기조실장은 “심각한 세수 부족으로 엉망진창이 된 경기도의 재정 상태가 원인인데, 엉뚱한 곳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경기도는 당장 내년 예산에서 국비 보조금 5000억원을 포기할 판이다. 국비가 오면 도에서 내야 할 돈(매칭 펀드)조차 없어서다. 돈이 없어 주는 돈도 못 받는다. 이런 와중에 복지 예산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심각한 지방 재정상태를 봐달라”고 말했다.

반면 전교조 경기지부 유재 정책실장은 “경기도의 행태는 무상급식이 쟁점이 되기를 바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과거로 회귀해서 복지 관련 내용에 대해서 유권자들에게 자기 뜻을 강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든다”고 말했다.

강대중 서울대(교육학) 교수는 “무상급식이 복지냐 의무교육이냐에 대한 사회적 재합의가 필요하다. 복지라면 보편적으로 할 것이냐, 선택적으로 할 것이냐에 대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의무교육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당연히 헌법에 따라 무상이 돼야 한다. 이걸 먼저 사회가 합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합의는커녕 정치적 충돌은 무상급식을 넘어 무상보육으로 번질 조짐이다. 서울시는 최근 버스·지하철 광고를 이용, 무상보육의 필요성에 대한 홍보전을 전개하고 있다. 서울시 보육예산에 대한 정부 보조비율을 높이라는 내용이다. 무상보육의 예산 규모는 초·중학교 무상급식의 세 배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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