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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근차 없는 장거리, 승용차로 출퇴근 사망 땐 산재

중앙일보 2013.08.24 02:30 종합 8면 지면보기
경기도 화성시의 한 화학제품 회사 연구원으로 일하던 안모(사망 당시 43세)씨는 2011년 4월 자신의 승용차로 퇴근하던 도중 갓길에 주차돼 있던 버스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직후 안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보름여 만에 사망했다. 안씨의 아내인 최모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공단은 산업재해보상법 제37조에 ‘출퇴근 교통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사업주가 통근용으로 제공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서 발생한 사고여야 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들었다. 최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다른 교통수단 이용 힘들 경우
행정법원, 업무상 재해로 인정
대법 판례와 달리 유연한 판결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 함상훈)는 안씨의 사고가 업무상 재해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고 23일 밝혔다. 회사와 안씨의 자택이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통근버스가 없어 승용차 이외에는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기가 사실상 힘들었다는 이유에서다.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안씨의 자택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회사로 갈 경우 걸리는 시간은 편도 2시간58분에 달했다. 재판부는 “3시간에 걸쳐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사회통념상 승용차를 이용한 통근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회사가 제공하는 통근버스가 없어 승용차를 이용해야 했던 만큼 안씨의 자가용 출근은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자가용으로 회사에 출근하는 도중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이를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을까. 일반 근로자가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다 당한 교통사고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였다. 법상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근로자가 이용할 때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도록 돼 있고 자신이 택한 교통수단으로 이동한 경우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대법원은 2007년 자동차공업사에 다니던 김모씨가 자가용을 타고 출근하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사건 상고심에서 “출퇴근 방법과 경로의 선택권이 근로자에게 있었기 때문에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김영란 대법관 등 5명의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출퇴근 행위는 근로자가 노무를 제공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적 과정”이라며 “사업주가 정한 출퇴근 시간과 회사 위치에 따라 방법이 정해지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입은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대부분의 자가용 통근길 교통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안씨 사건처럼 출근길 교통사고의 업무상 재해 해당 범위를 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들이 확산되고 있다. 행정법원 3단독 문보경 판사는 지난 2월 운수회사에서 화물차 운전기사로 일하던 박모씨가 자가용으로 출근하던 도중 발생한 교통사고 상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운수회사 특성상 심야나 새벽에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 만큼 대중교통을 이용해 통근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또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할 당시 개인 소유 차량으로 출퇴근하며 유류비를 사측에서 지원받기로 한 점도 고려했다.



 문성호 행정법원 공보관은 “원칙적으로 자가용 출퇴근자의 교통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지만 최근 들어 사업주의 지배·관리를 받는 부분에 대한 해석의 범위를 넓히는 판결들이 나오고 있다”며 “직장이 너무 먼데 회사가 제공한 교통수단이 없다는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면 자가용 통근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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