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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기자 칼 마르크스, 사상가 칼 마르크스

중앙일보 2013.08.24 00:10 종합 23면 지면보기
런던 특파원 칼 마르크스

칼 마르크스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356쪽, 1만8000원




칼 마르크스도 기자였다. 그것도 미국 신문의 유럽 특파원이었다. 유럽을 배회하던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현실 세계에 끌어들인 마르크스는 경제학자·철학자·정치이론가로 잘 알려졌지만 첫 직업은 기자였다. 1841년 예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이듬해에 독일 신문에 독일어로 첫 기사를 쓴 그는 30세이던 1848년부터 1862년까지 미국 뉴욕 데일리 트리뷴의 유럽특파원으로서 망명지 런던에서 영어로 기사를 써서 보냈다.



 이 신문은 당시 20만의 독자를 거느린 세계 최대 매체였다고 한다. 기자 마르크스가 가장 많은 기사를 쓴 것도 이 미국 신문이다. 자신의 기명 기사 350건, 평생 동지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이름으로 낸 것 125건, 두 사람의 공동 집필로 낸 것 12건 등 모두 487건의 기사를 실었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기명 기사 중 37건을 추려 소개한다. 크게 노예제도, 제국주의, 혁명과 전쟁, 세계의 사회와 정치, 세계의 경제와 금융의 다섯 분야로 나눠 정리했다. 기자 마르크스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단서이자 당시 세계 정세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료 구실을 한다.



 재미난 것은 ‘기자 마르크스’는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현장성과 객관성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점이다. 대신 역사적 분석이 풍부한 편이다. 놀랍게도 그의 기사들은 나중에 마르크스의 전매특허가 된 경제결정론에서 벗어나 있다. 사건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초점을 맞추고 정치인 발언이나 정부 정책의 이면에 깔린 의도를 찾으려고 애쓴 흔적은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한 영국 언론의 보도를 풍부하게 인용하는 방식은 현대 특파원의 글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사실과 의견은 구분한다’는 현대 저널리즘의 금과옥조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건의 객관적인 전달보다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데 더 신경을 쓴다는 느낌도 준다. 기사보다 칼럼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150년 전의 기사를 굳이 현재의 저널리즘 원칙에 맞춰 재단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남북전쟁에서 영국은 노예제도 폐지라는 대의보다 미국에 대한 견제에 초점을 맞춰 심정적으로 남부를 지원했다는 등 당시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사실도 보인다.



 마르크스는 금융위기·남북전쟁 등으로 신문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타의로 원고료 벌이를 그만두게 됐다. 아쉬운 건 실직이 마르크스의 사상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오직 추측만 가능할 뿐이라는 점이다. 그게 더 흥미로울 수도 있는 대목인데 말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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