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지식] 충성이란 이름의 독배, 그 맛에 취하지 않으려면 …

중앙일보 2013.08.24 00:05 종합 22면 지면보기
인간의 역사는 충성과 배신의 드라마다. 단체·기업·국가 등 모든 조직은 충성이란 큰 기둥에 의해 유지된다. 충성은 우리를 위험에서 보호해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위험을 안겨주는 두 얼굴을 하고 있다. 미국의 마피아 조직의 음모와 복수를 다룬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대부’. [중앙포토]


위험한 충성

충성은 사람과 사람 묶어주는 밧줄
헌신·타락 등 '천의 얼굴' 지녀
히틀러·닉슨이 부하에게 요구한 건
사유화된 군대식 충성의 나쁜 사례

에릭 펠턴 지음

윤영삼 옮김, 문학동네

304쪽, 1만5000원




사람들의 충성이 다 같은 충성일까. 아니다. 국가에 대한 군인의 충성과 두목에 대한 조폭의 충성이 어찌 같을 수 있나. 충성이란 대상에 따라 때론 숭고하고, 때론 사악하게도 나타난다.



 판단이 애매해질 때도 있다. 내부고발자는 배신자인가 영웅인가. 미국의 치부를 폭로한 스노든이나 매닝에게 쏠리는 비난과 지지 역시 극단적이지 않나.



 충성이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규범이라면 과연 보편적 미덕이라 할 수 있나. 이 책은 그런 의문에서 출발해 천(千)의 얼굴을 한 충성을 들여다 본다. 고결한 충성, 타락한 충성, 뒤틀린 충성, 이기적 충성, 위험한 충성….



 저자는 책머리에서 충성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묶어주는 밧줄에 비유한다. 개인에겐 안전망과 보험을, 집단에겐 정체성과 동기부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충성은 서로 믿을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 믿음은 집단의 노력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개개인에게도 더 많은 힘을 부여한다.”



 홍명보 감독의 ‘원 팀, 원 스피릿, 원 골’이란 구호도 결국 팀과 동료들에 대한 충성을 요구한 것 아닌가. 선수들은 이 말을 듣곤 ‘개인 플레이 하면 아웃이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했을 듯하다.



 팀 플레이의 극한은 전쟁터의 병사들에게 나타난다.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게 충성이라면, 이게 가장 필요한 때는 역시 전쟁이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전투를 치르는 병사들의 충성이 어디를 향하느냐다. 결론적으로 함께 사선을 넘나드는 전우에 대한 충성이 가장 앞선다고 한다. 국가에 대한 충성은 훈련소에서나 외치는 말이다. 실제 전투에선 병사들 사이의 상호 충성이 이념·리더십보다 몇 배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군대식 충성이 어디서나 늘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그 근거를 나치에서 찾는다. 아돌프 히틀러야말로 충성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였다. 모든 이에게 충성을 요구했다. 나치 친위대원들은 벨트 버클에 ‘나의 명예는 충성’이라는 문구를 새기고 다녔다. 충성으로 똘똘 뭉친 그들이 결국 무슨 짓을 저질렀나. 타락한 충성이다.



에릭 펠턴
 책 제목처럼 위험한 충성도 있다. 저자는 정치 칼럼니스트 제이콥 와이즈버그를 인용해 린든 존슨·리처드 닉슨·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들과 참모진을 위험한 충성, 사유화된 충성의 나쁜 사례로 꼽는다.



 “부하들의 충성에 집착하는 대통령의 업무 수행능력은 매우 나쁘다. 그런 대통령들은 고립될 뿐 아니라 피해망상에 젖어 조폭과 같은 패거리의 관점에서 정치를 바라보고 결국 권력을 남용한다.”



 이게 어디 미국 정치에만 통하는 말인가. 친박이니, 친노니 하는 말도 다 패거리 정치에서 나온 것 아닌가. 대통령의 말을 꼬박꼬박 받아 적기만 할 뿐 소신 표명을 할 수 없는 게 우리 풍토다. ‘그게 아니고요’라고 뻥긋했다간 ‘저 친구 로열티가 없구만’이라는 말이 비수처럼 날아온다. 대통령이 아무리 영특해도 딸랑거리는 예스맨으로 둘러싸인다면 뭘 할 수 있겠나. 자기 생각을 펌프질해 주는 말만 듣다 보면 꼭 필요한 정보를 놓치기 쉽다. 이는 업무 수행능력 저하와 권력남용으로 이어진다는 게 이 책의 메시지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심기를 함부로 거스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랫사람 입장에선 참 난처한 일이다. 그 해법을 저자는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의 말에서 찾는다.



 “토론할 때는 윗사람의 의견과 상관없이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제시한다. 그게 토론 단계에서의 충성이다. 하지만 일단 결정이 이뤄지고 나면 그 순간부터는 그 결정이 자신의 의견이었던 것처럼 몰입하여 실행하는 게 곧 충성이다.”



 문제는 윗분들이 다른 의견에 버럭 화를 낸다는 점이다. 닉슨도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면 충성심이 없다고 내쳤다고 한다. 그 점에서 아랫사람의 진정한 충성을 받느냐 못 받느냐 역시 중요한 리더십이다.



 이 책엔 나오지 않지만 생계형 충성이란 것도 있다. 몇 년 전 회사원들 사이에 등장한 SSKK라는 건배사가 상징적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까라면 까라는 대로’라는 이 말은 충성·복종·희생·결속을 두루 감싼 표현이다. 유머일 수도, 야유일 수도, 자학일 수도 있다. 조직에 몸담았다면 그 느낌 알 거다. SSKK와 함께 삼킨 알코올이 싸하게 위벽을 파고드는 그 느낌 말이다. 생계형 충성이란 그런 거다.



 그럼 도대체 충성을 하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저자는 애매하게 답한다. 적당히 하라고. 충성은 너무 모자라도, 너무 지나쳐도 곤란하다고 한다. 그럼 어떤 충성을 해야 하는가. 여기에도 추상적인 답뿐이다. 균형감각을 지니고 적절히 하란다. 그런데 우리에겐 더 좋은 답이 있지 않나. 수처작주(隨處作主)란 말이 그것이다. 어디서나 주인으로서 주체적인 의식을 지니며 조직에 기여하면 그게 바로 올바른 충성 아니겠나.



 책의 원제는 『Loyalty』. 충성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정리했지만 애정·의리·우정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것까지 충성에 꿰맞추려다 보니 곳곳에 무리가 보인다. 저자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문화담당 칼럼니스트로 재즈 가수와 트롬본 주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남윤호 논설위원





관련기사

▶ 3시간 대기 3분 진료, 병원이 앓고…『개념의료』

▶ 기자 칼 마르크스…『런던 특파원 칼 마르크스』

▶ 문장 너머로…『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

▶ 코난 도일, 추리작가로…『코난 도일을 읽는 밤』

▶ 피아니스트는 악보를…『그가 사랑한 클래식』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