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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대한제국 공사관 환수 기여 국민훈장 모란장

중앙일보 2013.08.21 00:58 종합 24면 지면보기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왼쪽)와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오른쪽)가 20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뒤 변영섭 문화재청장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미국 워싱턴 DC의 중심부 로건 서클에 있는 대한제국 공사관. 1910년 일제에 5달러에 강탈당했던 이 건물은 지난해 8월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오랜 기간 역사에서 잊혀졌던 이 건물을 102년 만에 되찾을 수 있었던 데는 건물의 가치와 매입 필요성을 한국 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린 이들의 역할이 컸다.

박보균 대기자, 김원모 교수
일제 5달러 강탈 102년 만에
"자주·독립 향한 외교거점 역사 교훈 주는 랜드마크로"



 정부는 20일 워싱턴 대한제국 공사관을 성공적으로 환수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와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1951년 제정된 국민훈장은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에서 공적을 세운 이들에게 대통령이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훈장이다.



 박보균 대기자와 김원모 교수는 대한제국 공사관과 관련한 저술과 언론기고를 통해 환수운동의 확산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았다. 박보균 대기자처럼 현직에서 활동하는 언론인이 국민훈장을 받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다.



미국 워싱턴 DC 중심가 로건 서클에 위치한 대한제국 공사관.
 워싱턴의 대한제국 공사관은 1891년 고종이 대미외교의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 내탕금(內帑金·왕실 비자금) 2만5000달러에 사들인 건물이다. 을사늑약 이전까지 지금의 주미 한국대사관 같은 용도로 사용됐다. 1910년 8월 경술국치 직후 일제는 5달러에 강제로 건물을 인수해 곧바로 미국인에게 10달러에 되판다. 1977년 전 소유주인 흑인 변호사 젠킨스(Timothy Jenkins)가 공사관을 인수했다.



 1983년 김원모 교수는 워싱턴등기소에서 공사관 관련 자료를 입수해 언론을 통해 건물의 가치를 알렸다. 김 교수는 당시 한국정부에 건물 매입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관 매입을 위한 구체적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2003년 미국 교민단체들이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공사관 구입을 추진했다.



 박보균 대기자는 2000년대 들어 저서 『살아 숨쉬는 미국역사』 등에서 공사관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전파했다. 이후 20차례 이상 현장을 방문해 자료를 수집하고 칼럼과 강연,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공사관 매입 여론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09년 정부는 건물 구입비 30억원을 별도 예산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집주인과의 의견차로 거래는 무산됐고 30억원은 불용액으로 처리됐다.



 2011년 8월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이 이끄는 헤리티지 문화포럼에서 박보균 대기자가 공사관의 비극적 사연을 설명했다.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당시 새누리당 의원)과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등 참석자들이 매입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2012년 문화재청은 매입주체로 문화유산국민신탁을 선정했고, 조 장관이 나서 현대카드의 정태영 사장에게 부동산 거래와 관련한 지원을 요청했다. 지난해 8월 20일 정부는 350만 달러(약 39억3000만원)에 건물주와 매입계약을 체결했다.



 20일 서울 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주미대한제국공사관 환수 유공자 서훈 및 포상식’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변영섭 문화재청장이 서훈자로 참석했다. 공사관 매입 창구였던 문화유산국민신탁은 대통령 표창을, 현대카드는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현지에서 매입협상을 진행한 씨비알이(CBRE) 코리아와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활용지원팀장에게는 문화재청장 표창이 수여됐다.



 훈장을 받은 박보균 대기자는 “빛 바랜 사진을 들고 워싱턴 공사관을 처음 찾았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고종의 자주와 독립을 향한 집념이 담긴 이 건물이 역사의 교훈을 보여주는 랜드마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이영희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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