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뭉칫돈 신고 안 한 47명 조사 착수

중앙일보 2013.08.21 00:51 종합 8면 지면보기
국세청의 ‘칼끝’이 세금을 피하려 해외에 돈을 묻어놓은 자산가와 기업을 겨냥하고 있다. 해외에 거액이 든 계좌를 갖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금액을 줄여 신고한 사람들이 1차 대상이다. 자진 신고를 받는 작업은 최근 마무리됐다.


국세청, 50억 이상 적발 땐 명단 공개 … 내년부터 형사처벌 가능
6718개 계좌 23조원 신고
작년보다 금액 23% 늘어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세청은 올 6월 한 달간 해외 금융계좌 신고를 받은 결과 678명이 6718개의 해외계좌에 22조8000억원의 예금과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20일 밝혔다. 신고 대상은 지난해 단 하루라도 해외 금융사에서 개설한 계좌에 10억원 이상의 현금이나 주식을 보유했던 개인이나 법인이다.



 올해 신고액은 전년(18조6000억원)에 비해 22.8% 급증한 수치다. 신고자 수가 4% 늘어난 걸 감안하면 신고액의 증가 폭이 두드러진다. 거액의 ‘뭉칫돈’ 신고가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개인 신고자의 경우 1인당 평균 신고액은 80억원으로 네 명 중 한 명은 50억원이 넘는 돈을 해외에 갖고 있었다. 법인의 평균 신고액도 552억원으로 지난해(471억원)보다 17% 증가했다. 국세청 구진열 국제세원관리담당관은 “올 들어 역외 탈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미신고자에 대한 처벌 강도를 높이겠다는 방침이 나오면서 신고가 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새롭게 신고한 사람이 상당수이며 금액도 큰 편”이라고 말했다.



 개인 신고자의 경우 부촌인 서울 강남·용산지역 거주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지역 관할 세무서에 신고된 액수는 1조6404억원으로 전체(2조5000억원)의 65%를 차지했다. 싱가포르·바레인·스위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세피난처로 지정했던 이력이 있는 나라 중에선 13개국 789개 계좌(2조5000억원)가 신고됐다.



 국세청은 곧바로 미신고 의심자 47명(법인 포함)에 대한 기획조사에 들어갔다. 외환거래 기록과 제보, 국제공조를 통해 확보한 정보로 볼 때 거액의 해외계좌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에 신고하지 않은 자산가나 기업이 대상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1차 대상인 47명은 혐의가 어느 정도 구체화됐다고 보면 된다”면서 “의심자에 대한 정보가 계속 들어오고 있는 만큼 조사는 2차, 3차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무당국이 강도 높은 조사에 나서는 것은 해외 미신고 계좌가 역외 탈세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국내외 차명 계좌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혐의로 기소됐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도 유사한 방식으로 자금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역외탈세에 대한 경각심이 크게 높아진 상황이다. 또 세수 확보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에서도 역외탈세자는 고소득 자영업자, 대재산가, 민생침해 사범과 함께 핵심 대상으로 지목돼 있다.



 국세청이 최근까지 적발한 미신고 해외계좌들도 세금 탈루에 활용된 경우가 잦았다. 서비스업체 사주 최모씨의 경우 회사가 해외 업체의 용역을 하고 받은 수수료를 홍콩의 페이퍼컴퍼니를 거쳐 자신의 미국 계좌로 빼돌렸다가 과태료와 법인세를 추징당했다. 또 제조업체 대표 유모씨는 탈루소득을 임직원 이름의 차명 해외계좌에 숨겼다가 적발됐다.



 하지만 국세청의 조사 강화만으로 숨어 있는 해외계좌를 양지로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이 많다. 실제 신고제도가 도입된 2010년 이후 미신고 계좌 적발 건수는 78건, 과태료 부과는 80억원에 그쳤다. 조사 수단과 인력의 한계 탓이다. 정부가 미신고자에 대한 처벌과 제보자에 대한 보상 강화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국세청은 올해부터 50억원 이상을 신고하지 않았다가 적발될 경우 그 명단을 공개할 계획이다. 또 내년부터는 이들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미신고 금액의 10% 이하의 벌금을 물리는 등 형사처벌도 가능해진다.



조민근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