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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외교용, 국내용 두 얼굴의 아베

중앙일보 2013.08.21 00:32 종합 29면 지면보기
서승욱
도쿄 특파원
20일 산케이신문의 여론조사를 보면 일본의 우경화가 비단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선명해진다.



 특히 일본의 종전기념일인 15일 아베 신조 총리의 전몰자 추도사에 대한 설문이 눈길을 끈다. 아베 총리는 1993년부터 20년째 모든 총리가 빠뜨리지 않았던 표현을 일부러 뺐다. “아시아 제국의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긴 데 깊은 반성과 더불어 희생당한 분들께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는 대목이다.



 설문조사에서 산케이가 ‘총리가 추도사에서 이 표현을 뺀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절반이 넘는 50.6%가 ‘그렇다고 답했다. 타당하지 않다는 답변은 고작 36.9%였다.



 또 ‘아베 총리의 추도사에 한국과 중국이 반발하는 게 타당한가’란 질문에도 무려 60.9%가 ‘타당하지 않다’고 답했다. 한국과 중국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반응은 30.5%뿐이었다. 세 명의 각료가 야스쿠니를 참배한 데 대해선 51.3%가 “타당하다”고, 38.5%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극우 성향 신문의 조사이니만큼 “좀 과장됐으려니…”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지난 4월 각료 네 명이 야스쿠니를 참배한 뒤 일본 국민의 48%는 진보 성향 아사히신문 조사에서도 “잘했다”고 답했다.



 여름 휴가 중인 아베 총리가 산케이신문을 봤다면 ‘각본 아베, 주연 아베’의 8월 15일 대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쾌재를 불렀을 것 같다. 그는 15일 하루를 잘 짜인 각본 속에서 대사를 능숙하게 소화하는 배우처럼 행동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포기한 것 자체로 한국과 중국에 할 도리는 다 했다는 태도였다. 그 다음은 모두 일본 내 지지세력을 향한 의도된 행동이었다. 야스쿠니에 대리 참배시킨 보좌관을 통해 “참배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또 자신은 TV 카메라 앞에서 내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참배 못하는 착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전몰자 추도사에 한국과 중국이 반발하자 참모들은 “전몰자들의 영령에 호소하는 형식으로 추도사를 바꿨기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결과적으로 ‘한국·중국의 시비로 참배 못한 총리 대신 관료들이 야스쿠니를 참배했다’는 여론몰이에 성공한 모양새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 총리의 8·15 야스쿠니 참배’란 대형 사고를 피한 한·일 양국은 이제 정상회담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일 모양이다. 밉다고 영원히 안 보고 살 수 없는 게 두 나라의 운명이라지만 ‘외교용 얼굴 따로, 국내용 얼굴 따로’인 아베식 꼼수는 참 보기 민망하고 딱하다.



서승욱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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