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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입힌 골목길, 나쁜 아저씨 싹 사라졌네

중앙일보 2013.08.21 00:31 종합 14면 지면보기
대표적인 우범지대로 꼽혔던 마포구 염리동 골목길이 소금길로 변신했다. 지역 주민들이 노란색 페인트를 입힌 전봇대에는 비상벨이 설치됐다. [김경빈 기자]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사는 초등학생 김미진(11)양은 집 앞 골목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게 소원이었다. 부모님은 딸이 조를 때마다 “골목길엔 나쁜 사람들이 많아 위험하다”고 말렸다. 염리동은 인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선 ‘고담동’으로 불렸다.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범죄의 도시 고담을 빗대 부른 것. 옛 마포나루를 거점으로 소금창고가 들어섰던 염리동은 대표적인 달동네다. 영화 속 고담 시티처럼 주민들은 밤이면 대문을 걸어 잠그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마음의 문도 닫혀 이웃 간 교류마저 사라졌다. 폭행·소매치기 등 각종 범죄가 끊이지 않아 경찰청이 서민보호 치안 강화구역으로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김양은 요즘 친구들과 골목에서 뛰어논다. 김양은 “소금길 때문에 골목 분위기가 달라져 근처에 사는 친구들도 일부러 놀러온다”고 말했다.

우범지대 염리동 소금길 변신
주민 앞장서 동네 페인트칠
비상벨도 달아 범죄 급감
아이 뛰어노는 운동코스로



 염리동 주민들은 지난해 ‘소금길’(1.7㎞)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가로등에 노란색 옷을 입히고 비상벨과 범죄예방용 IP 카메라를 설치했다. 주민 100여 명은 페인트통을 들고 계단과 담벼락을 알록달록하게 칠했다. 집안에서 키우던 화분도 골목으로 꺼내 놨다. 범죄의 온상이던 골목은 주민들의 운동코스로 변신했다.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소금지킴이집’ 6가구를 지정해 근처 경찰지구대에서 위기 대응 교육을 받았다. 서기운 염리동 치안센터장은 “소금길 설치 후 범죄 신고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했다.



 염리동 소금길은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마을공동체의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일종의 구(舊)도심 살리기 프로젝트로 호주 등 해외에선 ‘범죄예방디자인(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이란 전문 용어가 생겨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엔 충남·제주도 등 각 지역 주민자치위원회에서 견학을 올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범죄예방디자인 프로젝트에 5억7500여만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성공한 마을공동체 사례는 더 있다. 허물어져 가는 노후 주택이 즐비한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은 ‘동네 목수’들이 마을 지도를 바꿔 놓고 있다. 박학룡(44)씨는 2008년 목공·미장 등 건축일을 배운 주민들을 모아 집수리를 시작했다. 물이 새는 지붕을 고치고 골목엔 평상을 만들고 계단을 정비했다. 동네 목수 30여 명은 그동안 노후 주택 100여 곳을 수리했다. 박씨는 “무상은 아니지만 지역 사정을 잘 아는 목수들이 작업을 하다 보니 주민들의 호응이 좋다”고 말했다.



봉제공장이 밀집한 종로구 창신동엔 올해 초 첫 전파를 쏜 지역 라디오방송 ‘덤’이 인기다. 주로 미싱 작업에 종사하는 이곳 주민들에게 라디오는 세상과 만나는 유일한 소통수단이다. 덤은 주민들의 사연을 일주일에 한 번 소개하며 일종의 지역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손국희 기자, 우희선(서강대 신문방송학)

이지은(이화여대 영어영문학) 인턴기자 <9key@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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