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벤처1세대·대기업, 6000억 벤처 펀드 만든다

중앙일보 2013.08.21 00:31 경제 4면 지면보기
“빠른 시간 안에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안전한 곳 아니면 한국 투자자들은 투자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창업 초기 5년 동안엔 항상 월급일이 두려웠다. 미국에서는 아이디어만 좋으면 엄청난 리스크를 지더라도 과감히 투자를 진행하는데 이 풍토를 한국에 수입하고 싶다.”


미래창조펀드 사상 최대 조성

 미국에서 16년간 거주하며 현지에서 창업을 하기도 했던 유니퀘스트 김예환(44·미국명 앤드루 김) 대표는 2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미래창조펀드 조성협약식’에 참석해 한국의 벤처 풍토를 바꾸는 데 일조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유니퀘스트는 인텔·퀄컴 등 비메모리 반도체 업체에 기술 지원을 하며 매출액 2011억원(2012년 기준)을 기록한 업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창업 초기 단계엔 벤처 선배들이 돕고



 정부가 창조경제 실현 방안으로 야심차게 준비한 미래창조펀드가 그 윤곽을 드러냈다. ‘5·15 대책(벤처·창업 생태계 선순환 방안)’이 발표된 지 석 달 만이다. 펀드 규모만 6000억원으로 역대 벤처육성 펀드 가운데 가장 크다. 미래창조펀드는 1세대 벤처 창업자와 대기업·연기금 등 민간 부문이 4000억원을 출자하고 여기에 정부가 2000억원을 보태는 매칭펀드 형식으로 조성됐다. 조성된 펀드는 창업 초기 단계(2000억원)와 성장·후기 단계(4000억원) 두 분야로 나눠 투자된다. 미래창조펀드의 특징은 벤처 1세대와 선도 벤처업체들이 창업 초기 단계 투자자로 나섰다는 점이다. 네오위즈·다우기술·NHN 등 국내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일본 최대 인터넷 광고업체인 ‘사이버에이전트’ 등 국내외 우량 벤처기업이 창업 초기 단계(창업 3년 이내) 투자자로 참여했다.



대기업은 성장·후기 단계 기업 지원



선배 벤처기업이 자금 지원뿐만 아니라 창업·성장의 노하우를 전수해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게 정부의 의도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청은 인센티브도 제시했다. 창업 초기 투자는 모험적 투자로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민간 출자자에게 펀드 수익의 3%를 우선 배당한다는 방침이다.



 미래창조펀드에는 그동안 벤처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대기업도 참여했다. 두산·코오롱 등 대기업들은 전체 펀드의 31%인 1830억원을 모아 성장·후기 단계에 집중 투자한다. 이날 브리핑에 나선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은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벤처시장에 참여해야 ‘창업→회수→재투자’의 창업 생태계 연결고리도 회복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자로 참여한 두산인프라코어 이오규 대표도 “그동안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 간 관계가 ‘갑을 관계’ 등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면이 많았다”며 “이제는 제대로 투자하고, 필요에 따라 인수합병(M&A)에도 나서는 우량 벤처 투자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투자자로 참석한 선배 벤처인들도 자신들이 겪었던 시련을 얘기하며 노하우를 전수했다. 네오위즈 게임즈 이기원(42) 대표는 “창업 후 본궤도에 오른 뒤 ‘성장통’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네오위즈는 ‘크로스파이어’ ‘피파온라인2’ 등 인기 온라인게임을 서비스하며 2011년에 매출 6677억원을 기록했지만, 다음해 중국업체와의 갈등으로 서비스 중단, 계약조건 변경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돼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벤처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한 곳에만 올인하는 전략이 아니라 사업군 간 적절한 균형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다우기술 김영훈(55) 대표는 연구개발(R&D)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외환위기 당시 유일하게 R&D 예산을 늘렸던 PC기반 기업용 소프트웨어 분야가 이때까지 회사가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며 “펀드 투자자로서 R&D만은 포기하지 않는 업체들을 눈여겨볼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의 3분의 1 을 창업 초기 단계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미래창조펀드는 기술은 있지만 자금력이 달리는 초기 기업에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다. 1980년대 대표적 벤처 1세대인 이민화 KAIST 교수는 “정부가 벤처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고착화된 경제 구조로는 성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벤처 선도업체가 후배들을 끌어주는 게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좀비 벤처 양산 우려” 경고도



 하지만 이 같은 지원책이 정부에만 기대는 ‘좀비 벤처’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벤처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자금이 잘못 공급되면 돈의 힘으로 버티는 기업이 나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중소기업연구원의 한 연구원도 “국내 벤처의 문제는 투자자금 부족이 아니라 벤처 생태계를 만들 인재와 투자할 가치가 있는 기업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라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업체를 과감히 솎아내고 새 기업에 기회를 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영민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