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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옵션 취급당하는 국회법

중앙일보 2013.08.21 00:30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결산이란 지난해 정부 예산이 실제로 어떤 항목에 얼마큼 쓰였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예산을 짜는 것 못지않게 돈을 어떻게 썼는지 점검하는 것도 중요한 국회의 책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과거엔 정기국회에서 결산과 예산 심사를 한 묶음으로 연이어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의원들이 지역구에 생색을 낼 수 있는 예산만 신경을 쓰고 결산은 뒷전이란 비판이 많았다. 그래서 여야는 2004년부터 조기결산제를 도입해 정기국회 개회 전인 8월 31일까지 결산 심사를 먼저 마치도록 국회법 규정(128조 2항)을 바꿨다. 결산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2004년 이후 이 결산 기한이 지켜진 것은 딱 한 번(2011년)뿐이다. 거의 매해 이런저런 정치적 사정 때문에 결산 심사가 뒷전으로 밀린 탓이다. 아마 올해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 민주당이 국정원 댓글 국조 파행을 이유로 거리로 뛰쳐나가는 바람에 8월 결산 국회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일러야 다음 주 초부터 국회가 정상화된다 쳐도 이미 결산 ‘준법 처리’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결산 기한을 제때 못 맞춘다고 당장 어마어마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결산 지연은 필연적으로 예산 등 모든 국회 일정을 뒤로 늦춰 졸속 심사 등의 후유증을 낳기 마련이다. 그로 인한 피해는 언젠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결산 기한이 무의미해진 것은 의원들이 국회법을 우습게 알아서다. 의원들에게 국회법은 지키면 좋고 안 지켜도 그만인 옵션에 불과하다.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국회에서 국회법 위반은 상시적으로 발생한다. 가령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단을 선출하는 원(院) 구성의 시한은 총선 직후는 6월 5일, 임기 도중엔 5월 24일이다. 1994년 국회법에 정해놓은 규정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이런 법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하긴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의결토록 한 헌법 조항마저 가볍게 깔아뭉개는 의원들에게 국회법을 지키란 얘기는 농담거리도 안 될지 모르겠다.



 국회법 경시 풍조는 한국 정치의 선진화를 가로막는 암 덩어리다. 요즘 여야가 경쟁적으로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외치며 이런저런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다. 하지만 국회법을 어겨도 아무런 불이익을 안 받는 특권에 대해선 다들 꿀 먹은 벙어리다. 국회법이 강제력을 발휘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처벌 조항을 넣는 수밖에 없다. 말로 해서 안 되면 매라도 들어야 하지 않겠나. 이미 의원에게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 원 구성이 지연될 경우엔 세비 지급을 중단하자는 주장이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회가 제때 결산이나 예산을 처리 못할 경우 의원들이 세비 삭감 등의 처분을 받게 하면 어떨까. 물론 의원들이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법을 만들려 하진 않을 테니 국민들이 압력을 넣는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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