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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볼 만한 전시] 마운드 내려온 야구왕 박찬호, 미술관에 서다

중앙일보 2013.08.21 00:30 강남통신 14면 지면보기
유현미의 ‘초상화시리즈2-야구선수’는 박찬호 선수를 ‘왕과 거지’로 묘사한 11분25초짜리 영상이
다. 박 선수는 “작가와 5시간 인터뷰 끝에 찍은 영상이다. 사람들은 내게 화려한 옷을 입혀주지만 내 안에는 늘 무거움과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서울미술관]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의 ‘The Hero-우리 모두가 영웅이다’는 간단히 말하면 ‘박찬호전’이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1호, 개인 통산 124승을 기록하며 아시아 출신 최다승 기록을 세운 야구선수 박찬호 말이다. 살아 있는 유명인을 주제로 한 미술 전시이자 그의 애장품을 모은 박물관 전시이고, 미술관에 들여온 스포츠 주제전이다.



 전시의 주인공은 단연 박찬호다. 그가 꼼꼼히 모아둔 메이저리그 승리구 124개와 유니폼 50여 벌, 마운드에서 자신을 다잡는 문구를 적어둔 글러브 20여 개 등 야구 컬렉션 360여 점, 박찬호를 주제로 만든 권오상·이배경·뮌 등 현대 미술가의 작품이 선을 보인다. 숨은 주인공도 있다. 바로 전시를 보는 관객이다. 관객 중엔 1990년대 후반 박 선수와 골퍼 박세리 선수의 쾌거에 위안을 받으며 외환위기(IMF체제)의 터널을 지나온 이들이 있을 수 있다. 박찬호 선수처럼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보며 성장한 이들도 미술관을 찾을 게다. 어떤 관객은 미술관을 가끔 찾지만 야구엔 문외한일 수도, 미술관에 처음 온 야구광일 수도 있겠다.



  전시장 들머리의 230㎝ 조각은 예술의 역사가 스포츠와 함께했음을 떠올리게 한다. 박 선수의 사진 수백 장을 이어 붙여 만든 조각으로, 권오상의 작품이다. 유현미는 박 선수와의 장시간 인터뷰를 통해 그의 모습을 ‘왕과 거지’로 형상화한 미디어 아트를 내놓았다. 팬들이 씌워 준 왕관을 쓰고 있지만 내면엔 불안과 콤플렉스를 안고 있는 남루한 거지, 박 선수 스스로 규정한 자신의 모습이다.



 360여 점의 야구 기념품은 그가 세운 기록의 인포그래픽과 함께 전시됐다. 투수의 팔놀림이 예술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박 선수의 투구폼 캐스팅 조각 같은 시각물을 곁들였다. 이주헌 관장은 “미술관에 오지 않는 야구팬과 야구를 보지 않는 미술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도록 작품과 자료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 이상의 전시 방법을 고민했다”며 “박찬호가 우리에게 남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구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11월 17일까지. 성인 1만2000원, 초·중·고생 1만원. 02-395-0100.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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