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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그냥 떠나라 속박이 없어야 진짜 휴가다

중앙일보 2013.08.21 00:25 종합 31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올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워서일까. 휴가를 포기한 ‘휴가 염세주의자’들이 주변에 제법 보인다. 그들은 “어차피 집 떠나면 고생이다. 차라리 사무실 에어컨을 쐬면서 한여름을 보내는 게 낫다”는 논리를 편다. 이미 휴가를 다녀온 사람도 “이제 무슨 재미로 남은 여름을 보내느냐”는 ‘휴가 찬양주의자’와 “가족에게 의무방어전을 마쳤을 뿐”이라며 의미를 평가절하하는 ‘휴가 허무주의자’로 나뉘는 듯하다. 물론 이해는 간다. 막히는 길을 지나 붐비는 피서지에 도착해 무슨 신성한 갠지스강이라도 되는 듯 ‘사람 반 물 반’의 계곡물이나 바닷물에 잠시 몸을 담그는 ‘휴가 의례’는 심신에 활력은 주기는커녕 사람을 지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는 법구경 말씀처럼 휴가도 쓰기 나름일 것이다. 휴가와 여행을 활용해 인생을 극적으로 바꾼 사람의 이야기가 드물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달 초 134년 전통의 워싱턴포스트(WP)를 2억5000만 달러(약 2800억원)에 인수한 아마존닷컴 창업자 제프 베저스도 여기에 해당하지 싶다. WP 인수 뒤 흥미가 생겨 베저스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다 알게 된 사연이다. 컴퓨터·투자 전문가로 월가에서 일하던 그는 1994년 뉴욕에서 시애틀까지 대륙횡단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여행 중 떠오른 인터넷 기반 상거래에 대한 아이디어를 꼼꼼히 정리하고 다듬어 그해 시애틀에서 아마존닷컴을 창업했다. 그렇게 탄생한 아마존닷컴이 인터넷 상거래 혁명을 가져온 건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베저스에겐 지난 3월 포브스지 집계로 252억 달러(약 28조2300억원)의 재산을 안겨줬다.



 성격은 다르지만 비슷한 일이 아는 사람에게도 생겼다. 며칠 전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10여 년 전 이민을 떠난 친구인데 바쁘게 살던 와중에 가정불화가 생겼다고 들어 걱정하던 터였다. 하지만 그는 화해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왔다. 결정적인 계기는 가족끼리 떠난 대륙횡단 여행이었단다. 휴가 중 충분히 대화를 하면서 그간의 잘못을 반성하며 용서를 구했고 그 결과 집에 도착할 무렵엔 부부가 다시 손을 잡고 다닐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휴가와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놀라운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본 ‘휴가는 짧고 여운은 길다’는 유머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와 빙그레 웃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회장은 1년에 두 차례쯤 생각 주간을 갖는다고 한다. 최소한의 소지품만 챙겨 조용한 곳에 가서 일을 잊고 생각만 하는 휴가를 보낸단다. 그런 재충전이 그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고 보는 게 억측은 아닐 것이다. 여태껏 휴가를 망설였다면 지금이라도 일단 떠나자.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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