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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칼럼] 니하오, 곤니치와, 안녕하세요

중앙일보 2013.08.21 00:24 종합 31면 지면보기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창공을 가르며 낙하하는 폭포처럼 / 나는 고이지 않는 인생을 살고 싶다 / 킬리만자로의 흰 눈 / 그 눈을 받쳐주는 짙푸른 하늘 / 나는 바람에 맞서는 사자가 되고 싶다…’.



 1990년대 중반 도쿄특파원 시절 접한 일본 인기가수 사다 마사시(61)의 노래 ‘바람에 맞서는 사자(風に立つライオン)’의 가사 일부다. 마치 시 같은 가사를 조용히 읊조리는 노래라 얼핏 들으면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연상케 한다. 내용은 이렇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젊은 청년이 아프리카 케냐로 의료 자원봉사를 떠난다. 3년 뒤, 일본의 옛 애인으로부터 편지가 온다. “(기다리다 못해) 나 결혼해요”라는 편지다. 청년은 “나를 원망하지 않아 고맙다. 당신을 참 그리워했지만, 나는 케냐의 풍경과 동물, 그리고 무엇보다 내 환자들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떠날 수 없었다. 왠지 일본은 지금 길을 잘못 들고 있는 것 같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고 답장에 쓴다. 편지의 마지막 구절은 “멀리서나마 당신의 행복을 빈다. 결혼을 축하한다. 안녕”이다.



 노래를 처음 대했을 때 놀란 것은 1970년대 초반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나가사키 의대를 졸업하고 1971년부터 2년2개월 동안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북서쪽에 있는 나쿠루 지역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의사 시바타 고이치로(73)가 주인공이다. 사다는 시바타를 귀국 직후 만나 사연을 듣고 오래 가슴에 품고 있다가 1987년 노래로 만들어 발표했다.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고, 당시 일본 고교생의 의대 지망률을 높이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1970년대 초? 한국은 단순한 해외여행조차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일본이 왜 선진국인가를 노래 하나로 실감했던 추억이 있다.



 지난 6일 직항 편으로 14시간 가까이 비행한 끝에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했을 때 ‘바람에 맞서는 사자’가 저절로 머리에 떠올랐다. 시바타가 자원봉사하던 때로부터 40년이 흘렀다. 과연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케냐의 한국 교민들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케냐인들이 동양인을 보면 일본어로 ‘곤니치와(안녕하세요)’라고 했는데, 지금은 ‘니하오’라 한다”고 말한다. 최문정(42·여) 한국국제협력단(KOICA) 케냐 사무소장은 “중국 열풍이 엄청나다. 3월 당선된 우후루 케냐타 신임 대통령의 첫 번째 국빈 방문국도 중국이었다”고 말했다. 1970~80년대엔 적어도 아시아에선 일본을 따를 나라가 없었다. 에즈라 보겔이 『재팬 애즈 넘버원(Japan as Number One)』을 쓴 게 1979년이었다.



 그러나 요즘 아프리카는 ‘니하오’다. 중국은 2009년 미국을 제치고 아프리카 최대 교역국으로 떠올랐다. 작년도 아프리카와의 교역 규모는 1984억 달러. 한국의 작년 교역액 158억 달러와 비교가 안 된다. 그것도 모자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 3월 “중국과 수교한 모든 아프리카 국가의 대중국 수출상품 97%에 무관세 혜택을 주겠다”고 선언했다. 공자학당을 중심으로 문화교류 공세도 거세다. 아프리카인들의 반발과 우려도 나온다. 자원과 원료를 싹쓸이하고 시장을 장악해 산업의 자생력을 갉아먹는다는 비판이다. 중국은 특히 건물 하나를 지어줄 때도 현지 인력을 쓰지 않고 장비·사람을 중국에서 데려오고, 기술 이전에도 인색해 ‘포식적(predatory) 교역’이라는 욕을 듣고 있다. 케냐의 유명 화가 마이클 소이(41)의 작품(왼쪽 사진)들은 그런 중국을 코믹하고도 따끔하게 풍자한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고임 없는 인생’을 추구하는 수많은 ‘바람에 맞서는 사자’들이 아프리카에 가 있다. 케냐만 해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아산병원 등 국내 여러 병원이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골프에 ‘박세리 키즈(kids)’가 있듯이, 아프리카에선 KOICA 봉사단원 등 수많은 ‘한비야 키즈’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 반면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은 중국·일본에 비해 빈약하기 짝이 없다. 한 예로 외교부의 아프리카·중동국 올해 예산은 고작 10억원, 그중에서도 아프리카 사업예산은 달랑 4억원이다.



 아프리카에서 물량으로 중국·일본을 능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우리에겐 새마을운동 경험처럼 독자적이고 검증된 발전모델이 있다. 적도의 뜨거운 열기를 마다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있다. 제대로 뒷받침하고 북돋아주자. 기업들을 독려하자. 박근혜 대통령도 “아프리카에선 ‘왜 한국 중소기업은 안 오느냐’는 말을 한다”(5월 16일 중소기업인 만찬)고 말하지 않았던가. 좁은 국내에서 옹송그리지 말고 밖으로 쭉쭉 뻗어나가야 국운도 활짝 트이는 법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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