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 Report] 밀크 쇼크

중앙일보 2013.08.20 00:38 경제 2면 지면보기
우유 값 인상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1L 250원 인상 때 낙농가 몫 106원
제조업체 52원, 유통은 92원 챙겨
올려야 하나 … 우유 값을 파헤치다

 서울우유·매일유업·남양유업 등 우유 제조 ‘빅3’가 가격 인상의 논란에 선 가운데 대형마트와 편의점 업체에서 생산하는 PB(자체 브랜드) 우유의 저렴한 가격이 상대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19일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 12~18일 전체 우유 매출이 일주일 전에 비해 7.1% 감소했지만 PB 우유의 경우 2% 증가했다. 롯데슈퍼에선 매일유업이 당초 우유 값 인상을 예고했던 8일 하루 전날인 7일부터 PB 우유 매출이 일반 우유를 역전해 현재까지 이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PB 우유는 제조사 상품보다 가격이 30%가량 저렴하다. 유통·마케팅비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단체협의회(소협)는 19일 “서울우유의 경우 2010년부터 현재까지 광고비로 380억원, 해마다 약 100억원씩 지출했다”며 “PB 우유 가격이 낮다는 것은 결국 우유 제조업체의 유통비와 마케팅비 등이 과도하게 책정됐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유통·마케팅비 절감 외에 대학교 우유업체와 파트너십을 맺은 점도 가격이 싼 이유다. 홈플러스의 PB 우유는 연세우유가, 롯데슈퍼의 PB 우유는 건국우유가 제조한다.



PB제품의 매출 증가는 곧바로 제조업체의 매출 하락과 연결된다. 그런데도 제조업체가 ‘제 살 깎아먹기’식인 PB 우유를 출시하는 배경에는 유통·제조업체 간 보이지 않는 ‘협상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한 우유 제조회사 임원은 “우리 회사 상품이 대형마트에서 소비자 눈에 잘 띄는 진열대에 놓이기 위해서는 대형마트의 PB 제안을 뿌리칠 수 없다”고 말했다.



 우유는 식탁에 오르기까지 ‘낙농가→유업체→대리점→소매점’의 4단계를 거친다. 낙농가가 L당 얻는 마진은 원유가격(834원)에서 원유 생산비(745원)를 뺀 89원 정도다. 유업체는 이 원유를 재가공해 대형마트 등 소매점에 1900원 선에 판매한다. 대략 1050~1070원가량이 제조·유통 과정에서 더해지는 셈이다. 이 과정에는 제조경비 450원, 제조사 마진 250원, 대리점 마진 350원 정도가 포함된다. 소매점은 여기에 450원가량 유통마진을 더해 2350원이라는 소비자 가격을 정한다. 단순화하면 ‘745(원가)→834(낙농가)→1550(제조업체)→1900(대리점)→2350(마트)’의 순서로 가격이 뛰는 것이다. 우유업체가 이번에 내놓은 L당 250원 인상안은 생산원가와 이에 따른 원유 가격 인상분에 단계별 마진을 더한 것이다. ‘804(원가)→940(낙농가)→1700(제조업체)→2100(대리점)→2600(마트)’의 구조다.



 제조업체는 PB 우유의 낮은 가격을 일반 우유에 적용할 수 없는 이유로 마케팅·유통비 외에 대리점을 들고 있다. 대리점들의 생계도 우유 값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유업계는 올 상반기 ‘대리점 밀어내기’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우유업체 관계자는 “월 매출 4000만원 가운데 마진율 19%에 따라 760만원을 얻지만 사무실 임대료, 차량 유지비, 냉장고 설치비와 각종 세금을 제하면 대리점주가 손에 쥐는 건 월 400만~500만원 남짓”이라며 “대리점은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퇴직금·연금·의료보험 등 혜택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결코 좋은 벌이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우유 값을 250원 인상하면 낙농가는 106원, 제조사 52원, 대리점 42원, 유통업체는 50원 정도를 현재보다 더 챙기게 된다. 우유업체들은 “하나로마트 등 유통업체나 소비자단체도 지난 5년간 우유 값이 사실상 동결됐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느냐”며 ‘우유 가격 현실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2008년 우유 값 인상 당시 유통업체·대리점 마진만 인상했고 제조업체 마진을 인상 못했으니 이번에 올려야 한다는 논리다.



 소비자 단체들은 제조업체별로 마진율을 분석해 보자며 제조사를 압박하고 있다. 소협 조사 결과 우유 1L짜리 한 개를 팔 때의 마진을 100으로 보면 낙농업체·제조업체·유통업체 각각의 마진율은 42%, 24%, 34%다. 소협은 “원유 가격 인상 말고도 생산비와 유통비의 인상 요인에 대한 충분한 근거 없이 제조업체와 유통업체의 마진율을 지킬 목적으로 소비자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유 가격이 국가적 관심사가 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대표적인 어린이 음료이기 때문이다.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 변동이 비탄력적이라는 얘기다. 소비자들은 우유에 관한 한 가격이 인상돼도 대체재를 찾지 못한다. 우유는 또 물가 파급효과가 크다. 원재료 중 우유 비중이 높은 빵·아이스크림·가공유(커피우유 포함)·발효유 등의 가격이 연쇄적으로 인상될 수 있다. 가공식품 원가 중 원유 값의 비중은 빵 7~10%, 아이스크림은 10%, 가공유는 70%, 발효유는 50% 정도로 추산된다. 추석을 앞두고 소비자 물가 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정부는 우유발 ‘도미노 물가 인상’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유업계는 가격 인상의 키를 쥔 업체로 농협 하나로마트를 주목하고 있다. 2011년 10월에도 하나로마트는 우유업계의 가격 인상에 제동을 건 적 있다. 제조업체가 흰우유 리터당 가격을 2150원에서 2350원으로 올리겠다는 ‘200원 인상안’을 내놨지만 하나로마트가 자신들의 마진을 줄이면서 50원 낮은 2300원에 우유를 공급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제조업체는 당시 하나로마트의 가격 인하 방침이 이번 상승분을 오히려 늘렸다는 입장이다. 유업계 관계자는 “5년간 올리지 못한 유류비·수도료·전기료·인건비 등이 당연히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대리인을 내세워 가격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만약 독과점 형태인 우유시장에서 가격 담합이 이뤄진다면 공정위가 과징금을 물려야지 가격 자체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 기능의 왜곡”이라며 “경쟁을 촉진시키고 시장에 가격 결정을 맡겨야 장기적으로 우유 값이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희·김영민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